지난 8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마리카르멘 아바스칼의 아파트 앞에 모여 그를 추모하고 있다. 87세 연금생활자였던 아바스칼의 강제 퇴거는 스페인의 만성적인 주택난에 항의하는 전국적인 시위를 촉발했다. 사진=AFP·연합뉴스
지난 8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마리카르멘 아바스칼의 아파트 앞에 모여 그를 추모하고 있다. 87세 연금생활자였던 아바스칼의 강제 퇴거는 스페인의 만성적인 주택난에 항의하는 전국적인 시위를 촉발했다. 사진=AFP·연합뉴스
주택난에 항의하는 시위가 스페인 주요 도시로 번지는 상황에서 여야가 조기 총선 경쟁에 돌입했다. 정부가 마련한 세입자 보호 법안이 야권의 반대로 부결되자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내달 조기 총선을 발표한 것. 하지만 여론조사에선 우파엔 야당의 과반 확보 가능성이 제기됐다. 최근 집을 잃은 87세 노인의 사망이 겹치면서 주거 문제가 선거 정국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10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산체스 총리는 이날 남부 안달루시아 광역자치주 세비야 외곽의 도스에르마나스에서 선거운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집권 사회노동당(PSOE)의 전통적 거점으로, 산체스 총리가 2016년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정치적으로 재기한 곳이다.

산체스 총리는 진보 매체 엘디아리오 인터뷰에서 "스페인에는 사회적 진보가 더 필요하고 우파로부터 받는 모욕은 줄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리카르멘 아바스칼 사례처럼 부당하게 집에서 쫓겨나는 일을 막겠다는 뜻도 보였다.

주택난에 대한 분노는 87세 아바스칼의 사망을 계기로 커졌다. 평생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 집에서 쫓겨난 그는 지난 7일 숨졌다. 이튿날 마드리드에서는 2만명이 추모 행진에 참여했다. 시민들은 그의 옛집 앞에 꽃과 편지를 놓았다. 아들과 함께 추모에 나선 사라(41) 씨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마리카르멘의 죽음은 사회가 사람을 돌보지 않고 죽게 한 과정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바르셀로나에서도 항의가 이어졌다. 지난 5일 '주거의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에 경찰 추산 2만명, 주최 측 추산 12만명이 참여했다. 시위가 격화하면서 13명이 체포되고 경찰관 30명이 경상을 입었다. 지난 9일에도 시민들은 "뭐가 문제일까. 우린 집이 없다"라는 문구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시위대와 주요 노조는 내달 11일 총선 전 주거·임금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총파업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 대규모 총파업이 성사되면 2012년 이후 처음이다.

선거 판세는 산체스 총리에게 불리하다. 전날 공개된 엘파이스 여론조사에선 국민당(PP)과 극우 복스당이 하원 350석 중 198석을 얻을 것으로 예측됐다. 엘콘피덴시알 조사에서도 두 당의 예상 의석은 200석이었다.

2023년 총선 당시 국민당은 제1당을 차지했지만 복스당과 합쳐도 과반에 못 미쳤다. 이에 사회노동당이 좌파 수마르와 연합해 정부를 구성했다. 복스당은 현재 광역자치주 4곳에서 국민당과 연립정부를 꾸리고 있다. 이번 총선을 통해 복스당이 중앙정부에 진입한다면 1975년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사망 이후 스페인 민주화 과정에서 처음 있는 일이 된다.

알베르토 누녜스 페이호 국민당 대표도 이날 마드리드에서 유세를 시작한다. 2023년에 이어 두 번째 총리직 도전이다. 그는 주택난과 함께 총선 쟁점으로 떠오른 이민 문제를 놓고 북아프리카 자치도시 세우타의 이주민 난입 사태 등을 거론하며 산체스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