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20여 년간 운영해온 ‘업적급’ 제도가 법적 논란에 휩싸였다. 업적급은 노사가 합의한 임금 인상분 중 일부를 떼어내 직원의 인사평가 결과에 따라 배분하는 제도다. 이를 도입한 기업이 적지 않은 만큼 판결에 따라 산업계에 미치는 여파가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적급이 뭐길래…연봉 올랐는데 월급 덜 들어왔다고?
9일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대한항공 전직 간부급 직원 A씨가 업적급 제도의 부적법한 시행으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제기한 임금청구 소송의 1심 결론이 다음달 나온다.

핵심 쟁점은 2004년 제도 도입 당시 적법한 동의 절차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바꾸는 이른바 ‘불이익 변경’을 하려면 근로자 과반수, 혹은 과반수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대한항공은 제도 도입 당시 임금협약으로 정한 인상분의 약 10~23%를 업적급 재원으로 돌리고, 인사평가에 따라 S등급 150%, A등급 125%, B등급 100%, C등급 75%, D등급 50%를 차등 지급하기로 했다. 노사가 임금 3% 인상에 합의해도 인상분 전부가 고정급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가 업적급으로 전환돼 평가에 따라 배분된다. 임단협에서 임금이 3% 올랐다고 해도 저성과 직원은 실제 인상률이 3%에 못 미치는 것이다.

A씨 측은 근로기준법상 필요한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적용 대상에 포함된 부장, 차장 등 1·2급 직원은 노조 가입 대상이 아니었는데도 3급 이하 조합원으로 구성된 노조가 이들의 임금체계까지 불리하게 바꿨다는 것이다. 또 당시 노조가 동의한 지침에는 업적급 신설 내용만 있었을 뿐 임금 인상분 일부를 재원으로 전용한다는 내용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김 의원이 확보한 대한항공 내부 문건에 따르면 당시 노조위원장은 회사의 개입으로 선출된 정황이 있어 부당노동행위 문제로 번질 여지가 있다.

회사 측은 업적급 제도가 무효가 되면 지난 20년간 회사와 직원 사이에 형성된 임금 관계를 다시 계산해야 해 법률관계가 극도로 혼잡해질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업적급이 무효로 판단되면 직원들은 최근 3년 치 임금 중 받지 못한 인상분 전액을 청구할 수 있다.

노동계에선 비슷한 제도를 도입한 기업이 적지 않은 만큼 이번 판결에 주목하고 있다. 김 의원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직원들에게 정당한 임금 인상분을 돌려줘야 한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산업계 전반의 유사 사례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기/곽용희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