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연설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연설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이 한국 정부의 대북 의료장비 지원 추진을 두고 "엄중한 주권침해행위"라며 거친 비난을 쏟아냈다. 한국 당국자들을 향해 "천성적인 바보들"이라고 조롱하는가 하면, 인도적 지원을 포함한 어떠한 접촉 시도도 '중대한 도발'로 간주하겠다고 위협했다.

김여정은 8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한국 정부의 대북 의료장비 지원 계획을 "또 다른 광대극"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지난 5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에 의료장비 지원을 위한 제재 면제를 신청하고 승인을 받은 사실을 전날 공개한 데 대해 "우리 국가에 대한 모독이고 변종된 정치적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한국 정부가 북한의 의약품·의료장비 부족과 보건 상황 악화를 지원 명분으로 제시한 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김여정은 "참으로 부산스럽고 눈꼴이 사나운 거동이 아닐 수 없다"며 "너절한 물건짝들의 목록이나 만지작거리며 신성한 우리 국가와 인민을 모독한 한국의 죄과는 철저히, 깨끗이, 후회 없이 계산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스스로를 정상적인 국가로 내세우는 상황에서 한국의 지원을 받아야 할 만큼 의료 환경이 열악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것을 경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정부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도 이어졌다. 김여정은 "서울당국이 하는 짓을 보면 모든 것이 다 일방적인 판단, 일방적인 결정, 일방적인 발표로 범벅돼 있다"며 "정치적 미숙성이거나 혹은 진짜 개조불능한 천성적인 바보들이 아닌가 하는 두 가지 의혹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최근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건도 재차 '자작극'으로 규정했다. 김여정은 한국 정부가 지뢰 폭발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몰아가면서 동시에 인도적 지원을 추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뢰 폭발 사건을 "어설프게 조작한 자작극"이라고 부르며 의료장비 지원 계획을 "광대극의 제2부"라고 비꼬았다.

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직접 거론하며 “한국의 관리 정동영이도 이번 '지뢰폭발사건'을 우리 공화국의 고의적 공격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스스로 고백하였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의료장비 지원 계획을 공개한 배경에도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여정은 "저들의 '선의적인 태도'와 이를 거부하는 우리의 '상반되는 태도'를 비교시켜 그 무엇이라도 얻어보려는 음흉한 정치적 타산이 깔려 있다"고 했다.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에도 거듭 선을 그었다. 김여정은 "한국과는 그 무엇을 주고받거나 엮이울 일이 일체 없으며 마주볼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절대불변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국것들과는 영원히 마주설 일이 없을 것"이라며 "악의로 나오든, '선의'로 나오든 무엇을 시도하는 그 자체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도전이며 중대한 도발로, 주권침해로 간주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담화는 한국 정부의 인도적 지원마저 정치적 도발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북한이 남북 간 군사적 갈등뿐 아니라 인도적 협력까지 전면 거부하며 '적대적 두 국가' 기조를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한국 정부가 북한의 보건 상황 악화와 의료장비 부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이 북한 지도부에는 체제 존엄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라며 "남북 간 불신이 깊어지면서 대화 재개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고 군사적 대치가 장기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