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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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가치가 엔화에 비해 빠르게 오르면서 원·엔 재정환율이 약 18년9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100엔당 840원대 중반까지 내려오자 엔화를 저렴하게 확보한 뒤 미국 국채 등 해외 자산에 투자하려는 국내 투자자들의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11일 우리은행에 따르면 지난 8일 원·엔 재정환율은 장중 100엔당 847원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 6일엔 장중 846원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는 2008년 1월2일 기록한 837.58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 8월 초 900원대를 웃돈 것과 비교하면 불과 두 달 사이 60원 이상 가파르게 하락했다.

원·엔 환율은 원화와 엔화의 상대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두 통화가 직접 거래되지 않는 만큼 각각의 달러 대비 환율을 이용해 산출한다. 최근에는 원화 가치가 상승하는 동안 엔화가 약세를 지속하면서 원·엔 환율 하락 속도가 가팔라졌다.

원화 강세의 배경에는 반도체 수출 증가가 자리 잡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의 투자 확대가 국내 반도체 업황을 뒷받침하면서 수출을 통해 유입되는 달러가 늘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 반도체 기업들이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원화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달러당 원화 환율은 지난 8일 1338.5원까지 하락했다.

일본은 정반대다. 일본은행(BOJ)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인상했지만 엔화 가치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말 달러당 164엔에 근접했던 엔·달러 환율은 미국과 일본 외환당국의 공동 개입 이후 한때 156엔대로 내려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재정 우려가 불거지면서 다시 상승해 지난 8일에는 158.21엔을 기록했다.

이처럼 엔화가 빠르게 약세를 보이자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환율 반등에 대비한 투자 전략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원화를 엔화로 환전한 다음 엔화로 거래되는 미국 국채 투자 상품을 매입하는 방식이다. 미국 국채 가격 상승에 따른 수익과 엔화 가치 회복에 따른 환차익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

실제 투자자들의 자금은 미국 초장기 국채를 편입하는 일본 상장지수펀드(ETF)로 유입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국내 투자자는 '아이셰어즈 미국채 20년 이상 엔화 헤지 ETF(ISHARES 20+ YEAR US TREASURY BOND JPY HEDGED ETF)'를 404만2938달러(약 54억2000만원)어치 순매수했다. 이 기간 일본 종목 가운데 세 번째로 많은 금액이다.

이 상품의 국내 투자자 보관금액은 지난 2일 기준 2억7277만달러(약 3651억원)에 달한다. 일본 종목 가운데 두 번째로 큰 규모다.

해당 ETF는 만기가 20년 이상 남은 미국 국채에 투자하면서 달러와 엔화 사이의 환율 변동 위험을 헤지하도록 설계됐다. 국내 투자자가 원화로 엔화를 매수해 이 ETF에 투자하면 달러 표시 미국 국채에 투자하면서도 원화 대비 엔화 가치의 변화에 노출되는 효과를 얻는다.

최근 미국 국채 금리가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도 투자 수요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미국 국채 20년 만기 금리는 지난달 4일 연 5.250%에서 이달 5일 연 5.712%로 0.462%포인트 상승했다. 채권 금리와 가격은 반대로 움직이는 만큼 향후 금리가 하락할 경우 장기채 가격이 상승할 여지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