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개신교 '헌금바구니' 서비스
신한, 조계종 디지털 신도증 출시
수백만 신자, 장기고객으로 확보
서울 옥수동성당에 다니는 박영선 씨(36·세례명 비비안나)는 주일 미사 봉헌 때마다 지갑 대신 휴대폰을 꺼낸다. 매일 기도할 때 쓰는 ‘가톨릭 하상’ 앱에서 간편결제로 헌금을 할 수 있어서다. 박씨는 “미리 돈을 충전하고 인증번호만 입력하면 헌금이 끝나 봉헌 줄이 길어도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박씨가 쓰는 ‘가톨릭페이’는 우리은행, 우리카드가 천주교와 함께 내놓은 비대면 금융 서비스다. 우리금융그룹은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대규모 천주교 행사인 세계청년대회(WYD)를 계기로 가톨릭페이 이용자를 늘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른 은행들도 개신교, 불교 등 종교별 디지털 플랫폼을 선점해 고객을 유치하고자 힘을 쏟고 있다.
◇ 가톨릭 잡기 나선 우리은행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최근 천주교 서울대교구와 WYD 운영 과정에서 필요한 종합 금융 서비스 제공 방안을 협의하기 시작했다. 내년 7월 29일~8월 8일 열리는 WYD는 전 세계 청년이 모이는 국제 가톨릭 행사다. 아시아 국가가 개최국이 되는 것은 1995년 필리핀에 이어 두 번째다. 레오 14세 교황이 방한할 가능성도 커지며 세계 천주교 청년 신자 100만 명 이상이 참가해 결제·환전 등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은행은 WYD에 참여하는 신도가 가톨릭페이의 봉헌 기능을 활용해 기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국내 가톨릭페이 가입자는 올해 상반기 기준 약 9만4000명이다. 월평균 거래는 10만 건이 넘는다. 우리은행은 가톨릭페이를 출시한 2023년 4월에 우리페이 결제 기능을 천주교 공식 앱(가톨릭 하상)에 얹는 방식의 간편결제 서비스를 선보였다. 앱 사용자 13만 명 중 71.7%가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가톨릭페이는 신도가 계좌를 등록해 돈을 충전하면 주일헌금과 미사예물 등을 앱으로 낼 수 있다. 주일헌금은 성당의 QR코드를 찍으면 된다. 현금 봉헌은 안 되던 연말정산 세액공제 혜택도 자동으로 받을 수 있다. 서울, 경기 수원과 의정부 등 수도권 교구 위주로 전국 15곳에서 이용한다. 지방 교구에서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우리은행은 해외 순례자를 위한 오프라인 점포 운영도 준비하고 있다. 순례자의 동선을 따라 환전 및 금융 안내를 할 계획이다. 서울 명동성당에 있는 가톨릭회관지점과 명동금융센터뿐 아니라 서울 소공동·남대문시장지점, 인천공항지점 등을 잇는 형태다. 행사 참가자가 몰리는 곳에는 이동점포를 두고 환전과 해외카드 사용법,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출금 요령을 담은 다국어 안내서를 배포할 예정이다.
◇ 종교별 ‘터줏대감 은행’ 자리 잡아
다른 은행도 종교 영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2020년 개신교용 비대면 헌금 서비스를 선보였다. 국민은행은 2023년 교회뿐 아니라 성당, 사찰, 기부단체에 돈을 보낼 수 있는 ‘KB마음더하기’ 서비스로 이용 범위를 확대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3월 조계종과 업무협약을 맺어 신도증에 신용카드 기능을 넣고 신도 관리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은행이 종교 영업에 적극 나서는 것은 장기 고객 수백만 명을 확보해 여·수신 기반을 두텁게 다지기 위해서다. 종교단체는 한 번 거래 은행을 정하면 오랫동안 입찰 없이 관계를 이어가는 편이다. 출혈경쟁 속에 입찰로 운영사를 결정하는 지방자치단체 금고와는 차원이 다르다. 대를 이어 같은 종교를 믿는 가족이 많아 세대를 잇는 고객군을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종교 영업의 장점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종교 금융 플랫폼을 한번 이용하면 바꾸기 어렵다”며 “WYD 같은 대형 행사에서 조력자로 나서 기여하면 해당 종교에서 입지를 단단히 굳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