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한국거래소의 시가총액 미달 기업 상장폐지 결정에 제동을 걸었다. 덩치가 작은 기업을 솎아내 코스닥시장의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한국거래소의 방침도 흔들리게 됐다. 기업과 주주는 상장 지위를 지킬 시간을 벌었지만 퇴출 여부와 거래 재개 가능성이 불확실해 시장 혼란이 커질 전망이다.
◇급등 뒤 거래 중단…주주는 ‘거래절벽’
디스플레이 소재 기업 세진티에스는 지난 2일 코스닥시장에서 13.55% 오른 1031원에 거래를 마쳤다. 상장폐지를 앞두고 정리매매 중이던 이 회사는 이날 장중 16% 이상 치솟았다가 오후 2시6분 거래소가 정리매매를 중단하며 거래가 막혔다. 법원이 주연테크와 케이엠제약의 상장폐지 효력정지 가처분을 인용하자 같은 시총 규정을 적용받은 세진티에스도 규정 적용 여부를 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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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지 부품기업 에이에프더블류도 이날 같은 시간 정리매매가 중단됐다. 이 회사는 6일까지 정리매매를 거쳐 오는 7일 상장폐지될 예정이었는데 관련 절차가 보류됐다. 골드앤에스와 핀텔도 상장폐지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해 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정리매매는 상장폐지에 앞서 투자자에게 주식을 처분할 기회를 주는 절차다. 이 과정에서 거래가 멈추면서 일부라도 투자금을 회수하려던 기존 주주와 정리매매 기간에 새로 주식을 산 투자자 모두 자금이 묶였다. 상장폐지 중단이 투자금 회수에 도움이 될 가능성은 있지만, 거래가 재개되기 전까지는 주식을 팔 수 없다.
가처분을 인용받은 기업의 주주도 상황은 비슷하다. 주연테크와 케이엠제약은 법원 결정 이후에도 거래정지 상태가 이어졌다. 회사 측은 거래소가 가처분 인용에 이의를 신청하면 이에 대한 법원 결정 또는 본안판결 확정 때까지 거래정지가 이어질 수 있다고 공시했다. 상장폐지를 일단 피했다고 해서 곧바로 주식을 사고팔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본안소송 길어지면…퇴출 정책도 불확
이번 결정의 영향은 소송 중인 기업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4일 기준 시총 200억원 미만 코스닥시장 상장사는 72곳, 주가 1000원 미만인 ‘동전주’는 44곳이다. 시총이나 주가가 이 기준을 밑돌았다고 곧바로 상장폐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 소형 상장사가 강화된 상장 유지 기준의 영향권에 있어 법적 대응을 검토하는 기업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가처분 인용 이후에도 법적 절차는 남아 있다. 가처분은 본안판결에 앞서 상장폐지 결정의 효력을 잠정적으로 멈추는 조치다. 기업은 본안소송에서 상장폐지 결정의 효력을 최종적으로 다투고, 거래소는 별도로 가처분에 이의 신청할 수 있다. 본안소송이 항소, 상고까지 이어지면 분쟁이 1년 이상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상장폐지의 적법성을 다투는 동안 주주 자금이 장기간 묶이는 문제까지 풀지 못하면 퇴출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소형주 투자 수요를 위축시키는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투자업계는 정부가 추진한 코스닥시장 체질 개선 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평가한다. 코스닥시장 상장 유지 시총 기준은 지난해 40억원에서 올해 1월 150억원, 7월 200억원으로 높아졌다. 내년 7월에는 300억원으로 강화된다. 법적 분쟁이 확산하면 부실기업을 신속히 퇴출해 시장 신뢰를 높이려던 정책 효과가 늦어질 수 있다.
반면 시장 수급과 투자심리 영향으로 시총이 감소한 정상 기업의 과도한 퇴출을 막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시총이 작다는 것만으로 기업의 사업성과 재무 건전성을 모두 판단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코스닥시장이 상승 흐름을 이어가려면 투자자가 필요할 때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거래소가 가처분 인용 기업의 거래 재개 조건과 정리매매 보류 원칙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