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뉴스
영국 노동당, EU 관계 재논의…브렉시트 다시 꺼냈다
30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버넘 총리는 리버풀에서 열린 노동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연금 트리플록 폐지와 새로운 국가돌봄서비스 설립, 웨스트민스터 선거제 개편 방침을 밝혔다.
FT는 버넘 총리가 단기적인 정책 집행보다 차기 총선에서 다룰 쟁점을 제시하는 데 무게를 뒀다고 전했다. 버넘 총리는 1시간 넘게 이어진 연설에서 현재 영국의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다며 기존 방식의 정치가 국가를 후퇴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장 예상 밖의 대목은 브렉시트 재논의였다는 분석이다. 노동당은 현 의회 임기 동안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 EU 자체에 재가입하지 않는다는 세 가지 원칙을 유지해왔지만, 버넘 총리는 차기 총선에서는 이 선택지들을 다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는 올해 말 예정된 EU·영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향후 대유럽 관계의 여러 선택지를 놓고 국민적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FT는 키어 스타머 전 총리 사임 이후 연기된 정상회의가 11월 20일로 잠정 잡혔다고 전했지만 공식 확정되지는 않았다.
버넘 총리는 브렉시트가 영국에 득보다 실을 더 많이 줬다는 입장을 밝혔다. 총리실 대변인도 논의 결과에 따라 노동당이 차기 총선에서 EU와 새로운 관계를 공약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 돌봄 개편도 핵심 축이다. 버넘 총리는 차기 총선 이후 자택 돌봄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가돌봄서비스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무상 사회돌봄에 필요한 연간 비용은 70억~180억파운드로 추산된다.
그는 이를 국민보건서비스(NHS) 창설에 견줄 만한 정책으로 규정하면서 정치적 대가를 치르더라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치매를 앓다 별세한 아버지를 언급하는 과정에서는 감정이 북받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회 돌봄 문제는 보수당의 테리사 메이 전 총리가 2017년 총선에서 관련 정책을 제시했다가 정치적 부담을 겪었던 사안이기도 하다.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현행 연금 트리플록을 차기 총선 이후 폐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재 영국 국가 연금은 물가상승률과 평균임금 상승률, 2.5%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만큼 매년 인상되지만, 버넘 총리는 물가상승률과 2.5% 중 높은 수치를 적용하는 더블록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연금이 평균임금 상승을 따라가도록 하는 장치도 두겠다는 구상이다. 버넘 총리 측은 이를 통해 2040년까지 연간 150억파운드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가돌봄서비스를 출범시키려면 차기 총선 직후 단기적으로 상당한 폭의 증세가 필요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정치제도와 공공서비스 개편도 함께 제시됐다. 버넘 총리는 웨스트민스터의 단순다수대표제인 ‘퍼스트 패스트 더 포스트’보다 표심을 더 비례적으로 반영할 제도를 검토하기 위해 국가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당은 2024년 총선에서 전국 득표율 약 34%로 큰 의석 과반을 확보해 현 제도의 혜택을 받았지만, 버넘 총리는 차기 총선 공약에 선거제 변경을 포함하겠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2011년에도 선거제 개편이 국민투표에 부쳐졌으나 부결된 바 있다.
경제정책에서는 마거릿 대처 정부 시기 민영화 노선에 대한 비판을 다시 제기했다. 버넘 총리는 수도·주택·교통을 포함한 주요 서비스가 잘못된 방향으로 이동했다며, 수도회사에 대한 공공 소유를 금지한 대처 시대 법률을 폐지하기 위한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성장 구상은 핵심 서비스에 대한 공공 통제를 강화한 뒤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해 기업이 성장할 기반을 조성한다는 데 맞춰져 있다. 다만 EU와의 관계부터 국가돌봄서비스와 선거제 개편까지 상당수 정책의 세부 내용은 아직 협의와 위원회 검토 단계에 있으며 실제 시행 시점도 2030년대로 잡혀 있다.
버넘 총리는 남은 의회 임기 동안 이런 장기 정책을 놓고 국민을 설득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투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차기 총선은 늦어도 2029년까지 치러져야 하는 만큼 EU와의 관계를 어디까지 다시 설정할지, 국가돌봄서비스의 대규모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연금 개편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지가 향후 정책 논쟁의 주요 변수로 남게 됐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