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통신원 리포트-일본]‘일본인 임상’ 문턱 낮췄다… 드럭로스 대책이 바꾼 일본 신약개발 방정식
글 정권 객원기자
일본 신약개발의 오랜 공식이 바뀌고 있다. 일본 정부가 ‘드럭로스(drug-loss)’를 해소하기 위해 일본인 대상 임상시험 요건을 완화하면서 해외 임상 데이터만으로 일본 허가를 추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희소질환약을 중심으로 일본 진출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줄어들면서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의 개발 전략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일본제약공업협회(제약협)가 지난 9월 공개한 회원사 개발 프로젝트 조사에 따르면, 일본이 2상 이후 국제공동임상시험에 참여하지 않은 성인 대상 글로벌 개발 품목 가운데 해외 임상시험 데이터로 일본인에 대한 유효성과 안전성을 설명한 품목은 10%를 넘어섰다. 전년 조사보다 큰 폭으로 증가한 수치다.
이번 조사는 제약협 회원사 64곳이 올해 3월 말 기준 개발하거나 승인 신청 중인 1278개 프로젝트를 집계한 것이다. 전체 프로젝트 수도 전년보다 81건 늘어 조사를 시작한 이후 증가세를 이어갔다. 제약협은 희소질환약에 대해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일본인 환자 대상 임상시험 없이도 승인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 후생노동성의 규제 완화가 기업의 개발 전략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했다.
‘일본인 1상’이라는 16년의 관행
배경에는 드럭로스(drug-loss)가 있다. 해외에서 승인된 신약이 일본에서는 개발조차 시작되지 않는 현상이다. 후생노동성의 정리에 따르면 2016~2020년 유럽·미국에서 승인된 신유효성분 의약품 222개 품목 중 143개 품목이 2022년 3월 말 기준 일본 미승인이었고, 그중 86개 품목(60.1%)은 2023년 3월 시점에도 개발에 착수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 86개 품목의 56%는 벤처발 의약품, 47%는 희소질환약, 37%는 소아용 의약품이었다.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해외 벤처가 ‘일본은 나중에’를 선택하는 구조가 드럭로스의 실체다.4년간 일본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MDA) 상담에서 일본인 1상 여부가 쟁점이 된 40건 중 1상이 실제로 필요하다고 판단된 사례는 11건에 그쳤다. 나머지 72%는 없어도 되는 시험을 ‘관행상’ 요구받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