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백신은 오랜 기간 인류를 구한 든든한 면역 방패 역할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면역 방패가 중요하다는 게 다시금 확인됐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팬데믹 극복 후 백신의 위상은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백신의 개발과 활용을 확대하는 과정은 단순한 과학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중 소통, 정치 역학, 국가별 경제 구조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백신이 글로벌 보건 위기를 극복하는 효과적인 도구가 되려면 이런 요인이 잘 작동해야 한다.
사진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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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세계보건기구(WHO)가 확대예방접종사업을 시작한 이래, 예방접종은 전 세계에서 약 1억5000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 이 가운데 약 1억 명은 영아였다. WHO에 따르면 예방접종은 지금도 매년 350만~500만 명의 사망을 예방하고 있다.

위기에 처한 예방접종 프로그램

그러나 지금 오랜 시간 쌓아온 이러한 세계 보건의 성과가 흔들리고 있다. 2025년 초 미국의 주요 대외원조 프로그램이 해제되고,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WHO, 글로벌펀드 등에 대한 지원이 대폭 삭감되면서 최근 수십 년 사이 가장 급격한 글로벌 보건 재정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백신에 대한 거부감은 팬데믹 이후 더욱 깊어졌고, 이미 홍역을 퇴치했던 나라들에서 집단 발병이 다시 발생하고 있다. 영국, 캐나다, 유럽 여러 나라가 ‘홍역 청정국’ 지위를 잃었다. 이것은 백신 과학의 실패가 아니다. 대중 소통과 정치적 리더십의 실패다.

영아기를 넘어, 전 생애로

오랫동안 예방접종은 주로 영유아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그 초점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2025년 전 세계 영아의 약 85%가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DTP) 3차 접종을 완료했고, 예방접종사업이 이뤄낸 성과는 현대 공중보건의 가장 중요한 성취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