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즐겁게 살라"…'네팔 슈바이처' 이근후 교수 별세
국내 최초로 사이코드라마 치료법을 시도한 정신과 의사이자 '네팔 슈바이처'로 불린 산악인,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등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이근후(李根厚) 이화여대 의대 명예교수가 21일 오후 10시10분께 서울 종로구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22일 전했다.

향년 91세.
1935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북고, 경북대 의대를 졸업한 뒤 1973∼2001년 이화여대 신경정신과 교수로 강단에 섰다.

1970∼1973년 이화여대 부속 동대문병원 정신과 과장, 1990∼1991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회장, 1990∼1991년 대학법정신의학회 회장, 1982년부터 한국석불문화연구회 회장. 1970년대부터 복지법인 광명보육원 이사 등을 지냈다.

정신과 의사로, 산악인으로, 작가로 족적을 남겼다.

1974년 국내 최초로 '사이코드라마 치료법'을 극작가 오영진(1916∼1974)씨에게 제안해서 시도했다.

1970년대 이화여대 정신과 주임교수로 있을 때는 환자를 침대에 묶어놓는 등의 비인격적인 폐쇄 병동 시스템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상황에서 국내 최초로 개방 병동을 운영했다.

한국정신치료학회 설립에도 앞장섰다.

산악인으로도 여러 업적을 남겼다.

대학생 때인 1957년 김기문 전 대한산악연맹 부회장과 함께 국내 최초의 학생 산악단체인 경북학생산악연맹을 창립해 대한산악연맹의 기틀을 닦았다.

1959년 국내 첫 등산대회인 '제1회 전국 60㎞ 극복등행대회'를 팔공산에서 개최했고, 울진 성류굴과 강원도 관음굴 등을 발견했다.

"팔공산 텐트 안에서 의대 시험공부를 했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1982년 한국산악회의 마칼루 학술원정대 학술조사요원으로 참가했다.

원정대와 떨어져서 5개월간 셰르파 한명과 함께 히말라야 해발 4천∼5천m를 넘나들며 네팔 민속 조사를 벌였다.

이때 네팔 사람들의 정신적 문화적 힘에 매료된 것을 계기로 1989년부터 2001년 퇴임할 때까지 이화네팔의료봉사단을 만들어 매년 겨울방학에 네팔 오지 환자들을 돌봤다.

퇴직 후에도 네팔 봉사캠프를 조직해 활동을 이어갔다.

네팔 돌카라는 곳에 병원을 짓기도 했다.

퇴직 전인 1995년 부인인 이동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와 함께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를 설립해 청소년·부모·노년을 위한 상담· 교육 활동을 벌였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고 20여년 전 왼쪽 눈의 시력을 잃은 데다 당뇨 및 고혈압, 통풍, 허리디스크 등 지병에 시달리면서도 30권 이상의 저서를 냈다.

전공 서적인 '정신분석학', '최신 임상정신의학' 외에도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 '사랑한다면 증거를 보여줘', '위기의 남자',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이근후 박사의 네팔 산 우표 이야기', '네팔 문화 시리즈' 등을 펴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40만권 이상 판매됐다.

2011년 고려사이버대 문화학과를 최고령으로 졸업했다.

최근 저서 중 인상적인 구절을 모아서 큰아들 이명현(천문학자)씨가 엮은 책 '아버지 당신에게 인생을 묻습니다'를 마지막 작품으로 펴냈다.

지난 5월 혼인신고를 한 외손부 이단비씨는 "마지막 순간까지 유쾌하고 즐겁게 살다 가셨다"며 "우리 부부에게도 '죽을 때까지 즐겁게 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전했다.

유족은 부인 이씨와 2남2녀(이명현·이영주·이은채·이장욱), 며느리 이은성·박은선씨, 사위 장무식·최선희씨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발인 24일 오전 6시. ☎ 02-2227-7500
"죽을 때까지 즐겁게 살라"…'네팔 슈바이처' 이근후 교수 별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