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마에스트라’ 컬레션, ‘임프레시오니 다우투노’ 네크리스 / 사진출처. 다미아니
‘아르떼 마에스트라’ 컬레션, ‘임프레시오니 다우투노’ 네크리스 / 사진출처. 다미아니
‘겸재 정선’ 하면 묵직한 바위산과 장엄한 금강산의 기세가 떠오른다. 정선(鄭敾, 1676~1759)은 <인왕제색도>에서 먹의 농담과 힘찬 필획으로 조선의 산천을 생생하게 펼쳐 보인 진경산수화의 거장이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웅대한 자연에만 머물지 않았다. 늦가을에 피어난 국화와 나뭇잎 아래 웅크린 고양이, 그 앞을 스치는 작은 방아깨비까지 세심하게 바라보았다.

정선의 이 서정적인 면모가 100년 역사의 이탈리아 하이 주얼리 메종 다미아니(Damiani)의 보석으로 다시 피어났다. 다미아니는 정선의 <추일한묘>에 담긴 조선의 가을을 ‘아르떼 마에스트라(Arte Maestra)’ 하이 주얼리 컬렉션의 ‘임프레시오니 다우투노(Impressioni d’Autunno)’로 재해석했다.

<추일한묘>는 간송미술관 소장의 <화훼영모화첩(花卉翎毛畵帖)>에 실려 있다. 개구리와 두꺼비, 쥐와 매미, 날아드는 나비 등 계절 속 생명들을 담아낸 화첩 가운데 가을날의 한가로운 고양이를 그린 작품이 <추일한묘>다. 정선이 그렇게 비단 위에 붙잡아 둔 고요한 한때가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 이탈리아 하이 주얼리의 언어로 새롭게 번역된 것이다.
정선, 《화훼영모화첩》 〈추일한묘〉 / 사진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정선, 《화훼영모화첩》 〈추일한묘〉 / 사진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산수화 거장의 뜻밖의 다정함, <추일한묘>

<인왕제색도>의 묵직한 붓질에서 시선을 발아래로 낮춘 정선은 작은 생명의 움직임까지 놓치지 않는 다정한 관찰자였다. <추일한묘>는 이러한 면모를 보여주는 반전의 작품이다. 화면 위쪽에는 분홍색 국화와 강아지풀이 늦가을 바람에 흔들리고, 그 아래 웅크린 고양이는 눈앞의 방아깨비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웅대한 산수 대신 국화와 고양이, 작은 곤충이 이루는 소박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 안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축원도 담겨 있다. 고전 회화의 전통에서 고양이는 노년을 뜻하는 ‘모(耄)’와 음이 통한다고 여겨져 무병장수를 상징했다. 서리를 견디며 피는 국화는 곧은 절개와 지조를 의미했다. 작은 생명과 계절의 징후를 한 폭에 담아낸 정선의 이런 서정을 포착해 낸 것이 흥미롭게도 수백 년 뒤 이탈리아의 다미아니 장인들이었다.
‘아르떼 마에스트라’ 컬레션, ‘임프레시오니 다우투노’ 네크리스 / 사진출처. 다미아니
‘아르떼 마에스트라’ 컬레션, ‘임프레시오니 다우투노’ 네크리스 / 사진출처. 다미아니

‘임프레시오니 다우투노’, 조선의 가을을 두른 마스터피스

카라바조, 보티첼리, 모네, 고흐 등 서양 미술사의 거장들과 함께 정선은 ‘아르떼 마에스트라’ 컬렉션의 한 축을 이뤘다. ‘임프레시오니 다우투노(Impressioni d’Autunno)’ 네크리스가 <추일한묘>에서 영감받은 작품이다. 다미아니는 원작의 고요한 정취와 생명력을 핑크 골드의 유려한 선과 다채로운 젬스톤의 색으로 옮겨냈다.
‘아르떼 마에스트라’ 컬레션, ‘임프레시오니 다우투노’ 네크리스 / 사진출처. 다미아니
‘아르떼 마에스트라’ 컬레션, ‘임프레시오니 다우투노’ 네크리스 / 사진출처. 다미아니
메종의 금세공 장인들은 나뭇잎의 유기적인 곡선을 핑크 골드로 섬세하게 빚어 생동감 있는 실루엣을 완성했다. 그 위에 서로 다른 두 가지 녹색의 차보라이트 837개(총 10.10캐럿)와 브라운 다이아몬드 341개(총 3.70캐럿)를 촘촘하게 세팅했다. 초록에서 갈색으로 번지는 색의 변화는 계절이 깊어 가며 물드는 <추일한묘> 속 잎사귀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보석 사이에 드리운 명암은 정선 특유의 수묵 채색 농담처럼 깊이를 더한다.

작품의 중심에는 총 81.80캐럿에 이르는 여섯 점의 핑크 코랄(산호)이 자리한다. 매끄러운 라운드 카보숑 컷으로 다듬어진 산호는 잎새 사이에서 풍성한 볼륨을 드러내면서, 화폭 속 분홍색 국화를 닮았다. 정선이 비단 위에 담아낸 18세기 조선의 가을이 이처럼 산호와 차보라이트, 브라운 다이아몬드가 어우러진 한 점의 하이 주얼리로 다시 피어난 것이다.
 ‘아르떼 마에스트라’ 컬레션, 이어링 / 사진출처. 다미아니
‘아르떼 마에스트라’ 컬레션, 이어링 / 사진출처. 다미아니
[좌측부터] 정선의 ‘추일한묘’를 모티브로 한 ‘아르떼 마에스트라’ 컬렉션 이어링, 브레이슬릿, 링 / 사진출처. 다미아니
[좌측부터] 정선의 ‘추일한묘’를 모티브로 한 ‘아르떼 마에스트라’ 컬렉션 이어링, 브레이슬릿, 링 / 사진출처. 다미아니

손끝과 귓가로 번지는 계절의 선율

네크리스가 <추일한묘>의 화폭을 장대하게 펼쳐낸 가을 교향곡이라면, 이어링, 브레이슬릿, 그리고 링은 그 흐름을 이어받아 몸 위에서 번지는 섬세한 선율이다. 이어링에는 매끄러운 카보숑 컷의 핑크 코랄이 국화꽃처럼 만개했고, 그 아래로 차보라이트와 브라운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핑크 골드 잎사귀가 이어진다. 착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유연하게 흔들리는 구조와 빛의 각도마다 교차하는 보석의 반짝임은 늦가을 바람에 흩날리는 잎새의 순간을 포착한 듯하다.

브레이슬릿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나뭇잎이 손목을 부드럽게 감싸며 네크리스의 조형미를 이어간다. 핑크 골드 위에 번지는 초록과 갈색의 미묘한 변화는 계절이 깊어 가는 풍경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링은 화폭 속 작은 생태를 손가락 위에 응축한 듯 입체적이다. 솟아오른 잎사귀 중심에 풍만한 볼륨의 핑크 코랄이 자리해, 만개한 국화 한 송이를 연상시킨다.
[좌] 다미아니 장인이 ‘임프레시오니 다우투노’ 네크리스를 제작하는 모습  [우] 뒷면까지 이어지는 핑크 골드의 유려한 곡선과 매끄러운 마감에서 장인들의 섬세한 손길을 엿볼 수 있다. / 사진출처. 다미아니
[좌] 다미아니 장인이 ‘임프레시오니 다우투노’ 네크리스를 제작하는 모습 [우] 뒷면까지 이어지는 핑크 골드의 유려한 곡선과 매끄러운 마감에서 장인들의 섬세한 손길을 엿볼 수 있다. / 사진출처. 다미아니

시공간을 건너 이어지는 조선 가을의 여운

다미아니는 <추일한묘>의 선과 여백을 핑크 코랄과 차보라이트, 브라운 다이아몬드의 섬세한 색조로 풀어냈다. 보석의 강렬한 광채를 앞세우기보다 서로 스며드는 색과 명암으로 늦가을의 자연을 표현했다

보석으로 되살아난 가을의 감흥은 이제 원작 앞에서 한층 깊어진다. 겸재 정선 탄신 350주년을 맞아 대구 간송미술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겸재 정선―조선의 눈으로 조선을 그리다>(2026년 9월 16일~12월 27일)는 거장의 예술세계를 집대성한다. 특히 전시실 4에서는 약 2년에 걸친 복원을 통해 생기를 되찾은 《화훼영모화첩》과 그 안의 <추일한묘>를 직접 만날 수 있다.
겸재 탄신 350주년 기념 특별전 ‘겸재 정선, 조선의 눈으로 조선을 그리다’ 포스터 / 사진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겸재 탄신 350주년 기념 특별전 ‘겸재 정선, 조선의 눈으로 조선을 그리다’ 포스터 / 사진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추일한묘>에서 영감받아 완성한 다미아니의 ‘아르떼 마에스트라’는 세계의 주얼리 애호가들이 정선의 예술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국경과 시간을 건넌 이 만남은 우리 고전 예술이 오늘날에도 새로운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화폭 속 가을날의 작은 생명들은 이제 보석의 빛을 입고, 수백 년 뒤의 우리에게 조용한 울림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