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채권시장은 올해 하반기에 이례적으로 우호적인 환경을 맞고 있다. 지역 전반에 걸친 대규모 자본지출(capex) 붐이 외부 차입이 아닌 자국내 저축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경상수지 흑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근접해 있다. 또 달러화 채권의 순공급은 감소하고 있으며, 중국 부동산 부문 불안과 일부 구조조정 사례로 어려움을 겪은 이후 신용 펀더멘털 역시 안정화되고 있다.
동시에 스프레드가 축소됐음에도 불구하고 수익률은 여전히 역사적으로 매력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의 정책금리는 미국보다 의미 있게 낮은 수준에 위치해 있으며, 신용등급 상향 대비 하향 비율, '추락 천사(fallen angel, 투자등급에서 투기등급으로 강등된 채권)' 위험, 부도율 등 주요 신용지표도 투자자에게 우호적인 방향으로 개선되고 있다. 글로벌 금리 불확실성, 지정학적 리스크, 개별 크레딧 이슈에 따른 변동성 확대 가능성을 경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환경은 달러화 표시 아시아 크레딧과 현지통화 표시 아시아 채권에 대한 투자 논리를 뒷받침한다.
◆내부 자금으로 조달되는 자본지출 슈퍼사이클 아시아는 구조적인 자본지출 확대 사이클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 인공지능(AI) 및 디지털 인프라, 에너지 안보와 재생에너지 전환, 국방예산 확대, 그리고 산업 공급망의 리쇼어링에 따른 투자 수요로 인해 지역 전체의 자본지출 규모는 2025년 약 11조 달러에서 2030년 약 16조 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아시아의 투자 사이클은 2000년대 중반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투자는 증가하고 있지만 저축은 그보다 더욱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기업의 자금조달 구조를 보면 내부 창출 현금흐름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AI 관련 자본지출의 경우, 2026년 필요 자금의 약 85%가 내부 유보금과 현금에서 조달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 비중은 인프라 구축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점진적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아시아 하이퍼스케일러의 자본 지출 자료: 모간스탠리
이는 채권 투자자에게 두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아시아의 성장 스토리가 크레딧 시장이 흡수해야 할 대규모 신규 채권 발행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대규모 투자 확대 국면에서 흔히 우려되는 채권 공급 부담을 완화하는 요인이다.
둘째, 기업이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에도 은행 대출과 현지 금융시스템이 대부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는 신용시장의 수급 여건이 안정적인 이유를 설명해준다.
아시아는 AI 붐을 단순히 자금 조달을 통해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구축하고 있다. AI에 대한 많은 논의는 여전히 이를 미국 기업 중심의 스토리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AI 인프라 구축을 뒷받침하는 물리적 기반은 아시아에 집중돼 있다. 대만은 최첨단 반도체 제조의 중심지이며, 한국은 핵심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주도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데이터센터와 디지털 인프라 개발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와 기타 아세안(ASEAN) 국가들은 전자산업 제조와 반도체 공급망 내 점유율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채권 투자자에게 중요한 점은 이러한 거시적 성장 스토리가 실제로 기업들의 재무건전성 개선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섹터 내 일부 기업은 실제 신용등급 상향을 경험하고 있다. 대만의 2026년 경제성장 전망은 AI 관련 수요에 힘입어 크게 상향 조정되었으며, 한국은 사상 최대 수준의 기술 수출과 무역흑자 증가를 기록하고 있다. 싱가포르 역시 급증하는 전자제품 수출의 수혜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국가들의 성장세 강화는 궁극적으로 국가 재정건전성과 기업 신용 펀더멘털의 개선으로 이어진다.
◆감소하는 달러화 채권 공급은 수급 측면의 우호 요인 또 다른 구조적 요인이 앞서 언급한 자금조달 환경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아시아 차입자들은 점차 달러화 채권을 발행할 유인이 줄어들고 있다. 이번 사이클 동안 아시아 지역 내 정책금리는 대체로 미국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해 왔으며, 일부 아시아 통화는 간헐적인 절하 압력을 경험해 왔다. 이 두 가지 요인이 합쳐지면서 역내 또는 현지통화 기반 자금조달이 달러화 채권시장보다 더 저렴하고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고 있다.
자료: S&P, 피치, JP모간
특히 이번 수급 환경이 이례적으로 우호적인 이유는 개선되는 펀더멘털에도 불구하고 투자자 포지셔닝이 과도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시아 채권 전문 펀드들은 일반적으로 펀더멘털 개선에 수반되는 수준의 자금 유입을 경험하지 못했으며, 많은 글로벌 투자자들은 여전히 아시아 채권 자산군에 대해 구조적인 비중 축소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감소하는 공급이 개선된 펀더멘털을 아직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투자자 수요와 맞물리고 있다. 따라서 향후 투자자들의 자산배분이 정상화될 경우, 이는 단순한 캐리 수익 외에도 추가적인 수급 지원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신용 펀더멘털의 안정화 중국 부동산 부실 문제로 대표됐던 수년간의 어려운 시기를 지나며, 아시아 지역 기업들의 신용 펀더멘털은 전반적으로 완만한 개선 국면에 진입했다. 신용등급 상향 대비 하향 비율은 약 2.5배 수준까지 개선됐고, 하이일드 부도율은 약 1.8% 수준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잠재적 '추락 천사' 후보군도 크게 감소했다.
이러한 펀더멘털 개선은 일부 지역의 우호적인 성장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글로벌 AI 투자 붐은 동아시아 성장세를 견인하고 있으며, 달러화 채권시장 내 직접적인 수혜 기업들은 주로 반도체 및 메모리 업종의 소수 기업들에 집중돼 있다. 이들 기업은 현금 보유액 증가와 함께 대차대조표가 크게 개선되고 있다.
◆타이트한 스프레드, 그러나 매력적인 수익률 아시아 투자등급(IG) 크레딧 스프레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타이트한 수준에 근접해 거래되고 있으며, 미국 투자등급 크레딧 대비로도 더 좁은 수준에 위치하고 있다. 스프레드만 놓고 보면 밸류에이션 매력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스프레드는 총수익의 일부일 뿐이다. 글로벌 기준금리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아시아 크레딧의 총수익률은 역사적으로 매력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투자등급 채권은 약 5% 수준, 하이일드 채권은 약 7.5% 수준의 수익률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인덱스 펀드 자금 유출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수익률을 추구하는 투자자들의 자금을 유인하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 이는 스프레드 축소보다는 캐리 중심의 투자 논리로 해석해야 한다. 국채금리가 장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일부 추가적인 스프레드 축소 효과가 이를 부분적으로 상쇄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2026년 하반기에는 가격 상승보다 이자수익이 주요 성과 요인이 되는 가운데, 한 자릿수 중반 수준의 총수익률이 기대된다.
◆현지통화 채권시장의 보완적 역할 아시아 크레딧을 지지하는 동일한 요인들은 현지통화 표시 채권 및 금리시장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역내 정책금리가 미국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수출과 자본지출 확대에 기반한 경상수지 흑자가 지역 통화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 기업과 정부는 달러화 채권보다 현지 자금조달 시장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
여러 아시아 국가들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매우 견고한 거시경제적 조합을 보유하고 있다. 적정 수준의 인플레이션, 견고한 대외수지, 막대한 외환보유액,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통화정책 체계가 대표적이다.
채권 투자자 관점에서달러화 채권과 현지통화 채권은 상호보완적인 투자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현지 국채 및 회사채 시장은 깊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국내 투자자 수요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중앙은행들은 전반적으로 미국 중앙은행(Fed)보다 통화정책 운용 여력이 상대적으로 크다. 또한 지역 통화들은 구조적인 경상수지 적자가 아닌 흑자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조합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과거 현지통화 표시 아시아 채권을 기피해온 주요 요인이었던 환헤지 비용과 변동성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하더라도 상당 부분 완화시킨다.
◆주요 리스크 글로벌 금리 경로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 시장은 2027년 추가적인 긴축 가능성을 일부 반영하고 있으며,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와 AI 관련 부채 공급 확대 역시 듀레이션에 부담을 주고 수익률곡선의 스티프닝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AI 투자 사이클이 둔화될 경우, 대만·한국 및 광범위한 공급망 국가들의 성장 동력이 약화되면서 현재의 강세 논리를 지탱하는 핵심 축이 흔들릴 수 있다.
역내에서는 두 가지 보다 국지적인 리스크 요인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필리핀을 중심으로 한 아세안 일부 국가에서는 식품가격 민감도와 기후 변화에 따른 농업 생산 차질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정책금리가 예상보다 더 오랫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둘째, 중국 경제는 여전히 불균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출, 기술, 제조업은 견조한 반면, 가계 소비와 부동산 시장은 아직 완전한 회복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중동, 러시아, 대만해협을 둘러싼 긴장을 포함한 지정학적 리스크와 더불어, 주요 신흥국 선거 및 미국 중간선거가 이어지는 2026~2027년 정치 일정 역시 중요한 헤드라인 리스크가 될 수 있다. 현재 스프레드 수준에서는 밸류에이션 완충 장치가 크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이벤트들은 스프레드 재조정을 빠르게 촉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재 스프레드가 이미 타이트한 수준에 위치해 있다는 점은 추가적인 스프레드 축소를 통한 수익 창출 여력이 제한적임을 의미한다. 이번 투자 논리는 자본차익이 아니라 캐리(carry)에 기반한 것이며, 포지션 규모 역시 이에 맞춰 설정돼야 한다.
정리=서수경 한경글로벌뉴스 기자 skseo@hankyung.com
*이 글은 프린시펄자산운용이 정보 제공과 교육 목적으로 작성한 것이며 투자 권유나 자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