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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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정말 재미있게 본 팬이었습니다. 최민식 선배님이 캐스팅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감독님과 미팅을 진행했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평생 살면서 언제 최민식 선배와 영화에서 호흡을 맞출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대세 배우로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독보적인 필모그래피를 구축해 온 한소희의 철학은 분명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배우 앞에서도 주춤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며 이야기 안에 던져넣는 것. 그 피하지 않는 태도가 그를 끊임없이 성장하게 만들었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로 대중에게 강렬한 눈도장을 찍은 한소희는 이후 '마이 네임', '알고있지만,', '경성크리처' 등을 거치며 스펙트럼을 넓혔다. 독보적인 스타성과 감각적인 스타일로 전 세대를 사로잡아 온 그가 이번에는 영화 '인턴'을 통해 설립 3년 차 워커홀릭 CEO '선우' 역으로 변신하며 색다른 시험대 앞에 섰다.

영화 '인턴'은 창업 3년 만에 매출 100억원대를 달성하며 패션 업계의 다크호스로 성장한 젊은 CEO 선우(한소희)의 회사에 37년 경력의 베테랑 실버 인턴 기호(최민식)가 입사하면서 시작되는 세대 초월 오피스 라이프를 그린 작품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한소희는 "최민식 선배님이 현장에 날 싫어하면 어쩌나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셨다는데 거짓말이다"라며 운을 뗐다.

"저 역시 선배님이 날 싫어하면 어쩌나 고민이 많았지만, 인턴들과 선배님이 리딩을 많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습니다. 선배님은 현장에 늘 2시간씩 일찍 오시는 분이에요.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시죠. 본인 촬영이 아니어도 모니터 뒤를 지키시는 모습을 보면서, 현장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배웠습니다. '내가 이것도 못 따라하면 안 되겠다' 싶었죠. 현장을 편안하고 즐겁게 만들어 주시면서 배우 고유의 성격을 작품에 녹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작품이 끝났을 때 느낀 건 넘을 수 없는 큰 산 같은 존재라는 점이었어요. 연륜과 경력에서 나오는 내공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죄송했습니다. 기회만 된다면 다른 작품에서 꼭 다시 뵙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한소희 "주인공 독무대 아닌 오케스트라"…'인턴'서 배운 연대의 가치 [씬터뷰]
한소희는 원작과의 차이점에 대해 "같은 회사 구조이지만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써서 CEO다운 면모와 서툰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려 노력했다"며 "창립 멤버인 영환(김준한 분) 선배와는 오빠처럼 편하게 대하고, 직원들에게는 반말과 존댓말이 주는 각각의 힘을 살렸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회사의 기본 구조는 변하지 않기에 그 고유의 결을 지키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극 중 선우와 자신의 닮은 점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선우와 참 많이 닮아 있어요.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완벽하지 않은 부분들이 그렇죠.(웃음) 저도 남에게 조언을 구하기보다 혼자 해결하려는 편이라, 촬영 내내 기호 같은 어른이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살면서 갈피를 못 잡고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세월과 경험을 토대로 차선책을 알려줄 수 있는 어른의 존재가 그리웠던 거죠.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불안함 때문에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걱정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요새 20대들은 주관이 강하고 계획적이더라고요. 시대가 달라져도 세대를 초월해 느끼는 감정은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극 중 기호에게 마음이 열렸던 결정적 순간으로는 "잠이 보약이다"라는 대사를 꼽았다. 한소희는 "일을 좇다 보면 잘 먹고 잘 자는 본질을 잊을 때가 많다"며 "늘 빠르게 컨펌하고 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잠부터 자라'고 말해줬을 때, 선우의 잔뜩 곤두서 있던 마음이 풀리며 집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고 회상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명장면으로는 일본 선술집(이자카야) 세트장에서 펼쳐진 최민식과의 독백 장면을 언급했다. 한소희는 이 촬영을 앞두고 부담감에 잠조차 이루지 못했다고 전했다.

"주위 방해를 받지 않고 둘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감독님이 세트를 만들어 주셨어요. 혼자 감정을 잡으려는데 그날따라 선배님이 장난을 많이 거시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생각에 갇혀 본연의 감정을 놓칠까 봐 오롯이 소희로 서 있을 수 있게 배려해 주신 거였습니다. 원래 대사인 '대표님이 내 딸이었으면 정신차려'를 앞뒤로 도치해서 '정신차려'라고 던져주셨을 때 정말 깜짝 놀랐죠. 선후배가 아닌 기호와 선우로 스며들 수 있게 판을 깔아주신 최고의 배려였습니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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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들어서며 외적인 모습보다 내면과 건강을 바라보는 시선이 크게 달라졌다는 소신도 밝혔다. 과거 마른 몸을 강박적으로 추구했던 시절을 돌아본 그는 건강함이 가진 진짜 아름다움을 피력했다.

"급하게 살을 빼다가 몇 번 죽을 뻔한 적이 있어요. 외관은 예쁠지 몰라도 우리 100년 뒤엔 여기 없잖아요. 30대 중반으로 가면서 마른 몸만이 예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건강해야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죠. 팬들과 라방할 때도 '우리 죽을 때 병원 천장 보며 죽지 말고, 할당량 다 하고 건강하게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얘기합니다."

특별출연으로 함께한 강태오와의 부부 호흡에 대해서는 "얼굴합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착하게 생긴 얼굴로 바람을 피우니까 너무 짜증 났다(웃음)"면서도 "한 살 동생이지만 성숙하고 연기를 너무 잘하는 배우라 어색함 없이 좋은 그림을 만들어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한소희는 '인턴'이 주는 연대와 조화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촬영하면서 느낀 건 이제 주인공 혼자 끌고 가는 독무대의 시대는 지났다는 점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완벽한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롭게 움직여야 완성되죠. 최민식 선배님의 세상 따뜻한 얼굴과 함께 제 깜짝 춤과 노래까지 담겼으니, 지친 일상에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