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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 콜센터 된 지 오래"…젊은 경찰들 5년도 못 버텼다 [불신 청구서]
[불신 청구서(9)]
엉뚱한 곳으로 새는 경찰력
고소·고발 5년 새 76% 급증해
주취자·집회에 경찰력 곳곳 분산
저연차 퇴직자 10명 중 4명 차지
"지옥문 열릴 것" 현장선 자조도
엉뚱한 곳으로 새는 경찰력
고소·고발 5년 새 76% 급증해
주취자·집회에 경찰력 곳곳 분산
저연차 퇴직자 10명 중 4명 차지
"지옥문 열릴 것" 현장선 자조도
'불신 청구서'는 10월 2일 형사소송법 개정법률 시행을 한 달 앞두고 달라질 사법 환경의 사회적 비용을 짚어본다. 개정법 시행으로 보완수사권을 지닌 검사를 통해 미진한 수사를 걸러내던 장치가 사라지는 만큼 국민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국가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국민 개개인의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대가로 어떻게 되돌아오고 있는지 추적한다. [편집자주]
"주취자들도 처음이 힘들지 나중에는 순찰차를 공짜 택시처럼 이용해요. 주취자 1명 때문에 순찰차 1대와 경찰관 2명이 1~2시간을 할애해야 하는데 그야말로 '현타'가 옵니다."
경기 지역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A씨는 정작 필요한 곳에 쓰여야 할 경찰력이 엉뚱한 업무에 소모되는 현실을 얘기하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순찰차 한 대뿐인 지역에 신고가 두세 건 동시에 들어오면 주취자 대응에 묶여 정작 가정폭력 같은 긴급 사건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고 말했다.
수사·치안 현장에 투입돼야 할 경찰력이 각종 대응 업무에 분산되면서 정작 중요한 범죄 대응에 공백이 생긴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내달 새 형사소송법 체계까지 시행되면 "지옥문이 열릴 수 있다"는 자조도 나온다.
잇단 초동수사 부실 논란을 계기로 개인 책임뿐 아니라 반복되는 문제의 구조적 원인까지 함께 손봐야 공권력 불신과 치안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 고소·고발 5년 새 76% 증가…수사부서 '과부하'
10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에 접수된 고소·고발은 2020년 40만9407건에서 지난해 71만8330건으로 5년 새 75.5% 증가했다. 같은 기간 경찰서 실수사관 1인당 사건 접수 건수도 108.4건에서 133.8건으로 23.4% 늘었다.경찰 내부에서는 최근 수년간 이어진 제도 변화가 수사 부담을 단계적으로 키웠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에서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1차 수사 책임이 확대됐고 윤석열 정부 당시인 2023년 고소·고발 반려제가 폐지되면서 일선에서는 민원성 고소·고발까지 일단 접수해 처리해야 하는 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재명 정부에서 내달 검찰 보완수사권까지 폐지되면 이미 한계에 다다른 경찰의 수사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 경찰관은 "현장에서는 '전국민 콜센터된지 오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부연했다.
◇ 주취자·집회·소액 절도…곳곳에 묶인 경찰력
특히 주취자 대응 업무 등은 처리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조금이라도 대응을 소홀히 했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현장 경찰관에게 책임이 돌아올 수 있어 쉽게 손을 놓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지역 경찰 10년차인 A씨는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주취자 보호조치가 규정돼 있어 현장에서는 사실상 그냥 두고 갈 수가 없다"며 "몇 년 전 주취자를 집 앞까지 데려다줬는데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저체온증으로 숨지면서 출동 경찰관들이 징계를 받은 일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사후 책임에 대한 부담이 커질수록 현장 판단은 보수적으로 흐르고, 필요 이상으로 경찰력이 투입될 가능성도 커진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집회 대응 역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경찰관 B씨는 "5명이 모여 시위해도 경찰관은 30명 이상 배치·대기하고, 그중 20명 이상은 버스에서 온종일 대기한다"며 "지휘부가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경찰 인력을 과다 배치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 수천원 무인점포 절도에 생성형 AI 고소장까지
산업과 기술 환경이 변하면서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업무도 경찰력 부담을 키우고 있다. 무인점포에서 발생한 수천원대 절도도 정식 신고가 접수되면 현장 확인과 폐쇄회로(CC)TV 확보, 동선 추적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특히 CCTV 저장기간이 짧은 경우에는 다른 사건보다 먼저 영상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최근에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작성한 장문의 고소장까지 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 드는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법률 용어와 판례가 수십쪽에 걸쳐 적혀 있지만 정작 당사자가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거나 실제 사실관계와 다른 내용이 섞여 있어 수사관이 다시 하나씩 확인해야 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일선 경찰관 C씨는 "수사관 1인당 사건 수가 많다는 결과만 볼 게 아니라 왜 사건이 이렇게 늘어났는지를 살펴야 한다"며 "경찰이 처리해야 할 업무와 절차는 계속 추가됐는데 무엇을 덜어낼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다"고 짚었다.
◇ 시스템 만들어도 반복되는 '기준'의 문제
경찰은 이미 2016년부터 비긴급 신고에 경찰력이 소모되는 문제를 줄이기 위해 112 신고를 긴급도와 출동 필요성에 따라 코드0~4로 세분화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장에서는 긴급성이 낮은 신고에 경찰력이 장시간 묶이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경찰관 E씨는 "어디까지를 경찰이 반드시 다뤄야 하는 사건으로 볼 것인지부터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며 "실종 신고만 해도 가족과 다툰 뒤 연락을 받지 않는 경우, 술을 마신 뒤 연락이 끊긴 경우, 친구들과 놀면서 부모 연락을 받지 않는 경우 등 상황이 천차만별"이라고 밝혔다.
이어 "신고자가 '범죄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다'거나 '극단적 선택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면 현장에서는 별일 아닐 가능성이 있어 보여도 쉽게 긴급성을 낮춰 판단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 사명감 있는 경찰 떠나게 만드는 '악순환'
인사 시스템 역시 과부하를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새로운 업무가 생길 때마다 별도 인력을 충분히 보강하기보다 기존 부서에서 사람을 빼오는 방식이 반복되면서 현장 인력의 피로와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D씨는 "실종 수사팀이 부족하다고 하면 결국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사람을 가져갈 수밖에 없다"며 "셋이 하던 일을 둘이 하게 되면 남은 사람도 지쳐 '나도 휴직하겠다'는 경우가 생긴다. 악순환"이라고 했다.
신입 경찰관이 발령 후 1년 안에 기동대 의무복무를 거치면서 현장 업무의 연속성이 끊기고, 복귀 뒤 사건 접수와 민원 대응을 다시 익혀야 하는 비효율도 발생한다는 게 '허리급' 경찰관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특히 저연차 경찰관이 사명감을 갖고 수사부서에 들어갔다가 과도한 업무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최근 5년간 퇴직한 경찰관 1669명 가운데 근속 5년 미만은 669명으로 40.1%를 차지했다. 퇴직자 10명 중 4명은 입직 5년을 채우지 못하고 조직을 떠난 셈이다.
경찰관 E씨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절차를 만들고 다른 부서에서 인력을 끌어오는 방식이 반복된다"며 "비울 것은 비우고 채울 것은 채워야 하는데 그런 논의 없이 업무만 계속 늘어난다"고 꼬집었다.
◇ 제주 사태는 개인 일탈?…"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최근 잇단 논란으로 경찰 내부의 사기 저하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열악한 수사·치안 환경 속에서도 현장을 지키며 제 역할을 다하려는 경찰관들이 본연의 임무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달라는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F씨는 "어느 조직이나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과 그 문제를 수습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며 "잘못한 부분은 분명히 질타하되,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경찰관들이 지치지 않도록 독려하고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함께 마련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도 지난달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경찰력이 주취자 대응 등에 낭비되지 않고 일선에서 필요한 곳에 할당되도록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수사 기능이 경찰로 더 넘어갈 경우 인력 확충뿐 아니라 업무 재설계도 병행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 교수는 "경찰 업무 배치는 전문성 중심으로 가야 한다"며 "강도·살인·사기·사이버·실종 등 각 분야 전문가를 양성하고, 파출소도 야간 주취자 대응 같은 지역 특성에 맞게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