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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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건을 오른손에 쥔 채 무표정하게 무대 중앙으로 걸어나온 19세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6일 저녁 합창석까지 관객이 들어찬 서울 롯데콘서트홀의 분위기는 기대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웠다. 긴 기다림 끝에 김세현(사진)은 담담하게 첫 소리를 띄웠다.

김세현은 2025년 프랑스 롱티보 국제콩쿠르 우승 이후 국제무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피아니스트 중 하나다. 현재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과 하버드대에서 음악과 영문학을 함께 공부하고 있으며, 최근 워너 클래식을 통해 데뷔 음반을 발표했다.

첫 곡 슈베르트 소나타 18번은 작곡가 생애 후반의 깊이와 성숙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곡이다. 김세현은 1악장을 담백하고 직선적으로 풀어갔다. 프레이즈를 과장하거나 유연하게 늘이지 않아, 가공되지 않은 소박함이 느껴졌다. 첫 두 악장까지는 연주의 특별함이 뚜렷이 잡히지 않았지만, 3악장부터는 차이가 분명해졌다. 악장 중간 트리오 부분에서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라도 선율을 자유롭게 강조하고 싶을 법한 순간에도 김세현은 선을 넘지 않았다.

2부 첫 곡 쇼팽의 ‘뱃노래’는 섬세한 음색과 내면의 서정이 중요한 작품이다. 김세현이 도입부의 왼손 아르페지오를 시작하자 마치 베네치아의 물 위에서 곤돌라가 고요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선율을 노래하는 오른손 못지않게 베이스와 성부 사이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왼손의 손놀림이 탁월했다.

쇼팽의 12개의 연습곡(작품번호 25) 은 피아노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혁신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1번 곡은 앞서 연주한 ‘뱃노래’의 물결이 그대로 이어지는 듯, 빛나는 강물 위를 유영하는 감성적인 선율이 돋보였다. ‘겨울바람’으로 알려진 11번에서도 그는 난도의 극한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음악의 흐름과 자연스러움을 지켰다.

청중의 환호에 김세현은 10곡의 앙코르로 화답했다. 리사이틀의 숨은 후반부에 가까웠다. 쇼팽과 포레에서 아르보 패르트, 샤를 트레네까지 이어진 앙코르에서는 본 공연에서 자기 자신을 앞세우지 않던 피아니스트가 조금씩 19세다운 장난기와 여유를 드러냈다. ‘강아지 왈츠’로 알려진 쇼팽 왈츠(작품번호 64) 1번을 마친 그는 웃으며 건반 뚜껑을 닫고, 2시간 15분의 무대를 이끈 두 손을 털며 사라졌다.

김동민 뉴욕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