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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 7600만원인데 "꼭 갖고 싶다"…손 떨리는 '카펫' 정체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107회
명품 다음 격전지는 '거실'
에르메스는 의자, 아르마니는 집
공간을 파고드는 명품 브랜드
명품 다음 격전지는 '거실'
에르메스는 의자, 아르마니는 집
공간을 파고드는 명품 브랜드
최근 서울 강남에서 열린 ‘프리즈 서울 2026’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올해 처음 등장한 ‘머티리얼 프랙티스(Material Practice)’는 현대미술과 디자인의 접점을 다루는 새 섹션이다. 공예와 소재에 기반한 작업이 오늘날 현대미술과 컬렉팅의 영역을 어떻게 넓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올해 프리즈 서울에는 30개국 125개가 넘는 갤러리가 참여했다.
패션과 가구,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는 명품업계에서도 빠르게 흐려지고 있다. 에르메스는 가구와 식기를 만들고, 펜디와 아르마니는 소파와 침대, 조명을 판다. 보테가 베네타는 패션쇼 관람석 자체를 가구 디자이너의 설치작품으로 꾸몄다. 한때 명품회사의 사업 영역에 가방에서 신발과 향수, 주얼리로 비슷한 분야로 확장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소비자의 공간으로 그 영역을 뻗어나가는 모습이다.
중형차 한 대 값 웃도는 카펫
에르메스도 최근 홈 컬렉션을 보강하고 있다. 지난 4월 밀라노 디자인위크에서는 영국 디자인 듀오 바버 오스거비가 디자인한 ‘스타디움 데르메스’ 테이블과 팔라듐 마감 금속에 가죽·말총·목재를 결합한 신규 홈 오브제 라인 ‘팔라디옹 데르메스’를 공개했다. 가구·생활 영역 제품군을 한층 넓혔다.
물론 가격대는 상당하다. 에르메스의 ‘레 네세세르 데르메스’ 체어 가격은 국내 공식 온라인몰 기준 2801만원이다. 같은 라인의 새틀라이트 커피테이블 미디엄 모델은 2836만원이다. ‘메티에’ 데스크는 4349만원에 달한다. ‘리이디션 J.-M. 프랑크 파 에르메스 클럽’ 암체어 가격은 6698만원이다. 카펫 가격은 웬만한 중형차를 넘어서기도 한다. 대형 사이즈 카펫인 ‘코르들리 트렘플린’ 가격은 7636만원이다.
아르마니 옷 입고 아르마니 집에서 산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일찌감치 집 전체를 브랜드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아르마니/까사’는 가구와 러그, 조명, 식기 등을 판매한다. 2004년에는 별도의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도 설립했다.이 스튜디오는 최고급 아파트뿐 아니라 개인 요트와 비행기, 빌라, 고급 주거단지의 디자인까지 맡는다. 미국 마이애미 ‘레지던스 바이 아르마니/까사’에서는 공용공간과 편의시설, 주거 유닛의 인테리어를 담당했다. 아르마니 옷을 입고 아르마니 가구에 앉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아르마니가 디자인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 가능해진 셈이다.
올해 밀라노 디자인위크에선 홈 컬렉션을 전면에 내세웠다. ‘Origins’라는 이름 아래 브랜드를 대표해온 램프와 암체어, 콘솔, 바 캐비닛 등 8개 디자인을 새로운 소재와 마감으로 재해석했다.
보테가 베네타는 가구를 별도 상품군으로 확대하기보다는 패션과 ‘컬렉터블 디자인’의 경계를 흐리는 방식을 택했다. 지난 2월 밀라노에서 공개한 2026 겨울 컬렉션 쇼에서는 영국 가구 디자이너 맥스 램이 만든 ‘421 Chairs’라는 좌석 설치작품을 사용했다. 패션쇼 관람객이 앉는 의자까지 쇼의 디자인 언어를 구성하는 작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과거 명품 브랜드가 유명 작가의 미술품으로 매장을 꾸몄다면 이제는 브랜드가 가구와 디자인 오브제의 제작·기획 자체에 깊숙이 관여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해석이다.
명품은 왜 ‘거실’을 탐낼까
명품 브랜드가 생활 영역을 넓히는 배경에는 럭셔리 소비의 변화도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글로벌 명품기업들은 인기 제품 가격을 꾸준히 올리고 신발과 주얼리, 향수 등으로 상품군을 확장하며 성장했다. 최근 들어 글로벌 명품시장 성장세가 예전보다 둔화하고 급격한 가격 인상에 대한 소비자 부담이 커지면서 업계에서는 기존 고객과의 접점을 넓히는 것이 한층 중요해졌다.
패션보다 공간이 브랜드의 세계관을 더 오래 보여줄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옷과 가방은 계절이나 유행에 따라 바뀌지만 의자와 테이블, 조명은 오랜 기간 한 공간을 채운다. 럭셔리 브랜드 입장에서는 소재와 색, 형태, 장인 기술을 소비자의 일상에 가장 깊숙이 보여줄 수 있는 영역이다.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