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카리나 인스타그램
사진=카리나 인스타그램
"서랍 속 오래된 줄이어폰을 절대 버리지 마세요. 핫핑크나 네온 그린, 파스텔블루 컬러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무선 이어폰의 편리함에 밀려 '구시대 유물'로 전락했던 줄이어폰이 Z세대(1997~2006년생)의 최애 패션 아이템으로 부활했다. 에어팟으로 통일됐던 귀밑 풍경에 알록달록한 케이블이 다시 늘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아날로그적 향수를 소비하는 수준을 넘어, 무대 위 인이어나 목걸이를 연상시키는 '테크 주얼리'로 신분 상승했다는 분석이다.

지그재그 '유선 이어폰' 상품 등록 3배 폭증…'줄 꼬임'마저 패션으로

사진=에이블리 갈무리
사진=에이블리 갈무리
국내 패션 플랫폼 현장에서는 이미 지각변동이 감지된다. 4일 카카오스타일이 운영하는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 '지그재그'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6월1일~8월31일) 플랫폼 내 '유선 이어폰' 관련 등록 상품 수는 전년 동기 대비 223% 폭증했다. '줄 이어폰' 키워드 상품 역시 195% 늘어났다. 1년 새 관련 제품 공급이 3배 안팎으로 불어난 셈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유선 이어폰의 가장 큰 불편 요소로 꼽히던 '줄 꼬임'마저 하나의 스타일링 요소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기간 선을 정리하는 '줄감개' 상품 수는 51%, 작은 파우치나 집게 형태의 '이어폰 홀더'는 78% 증가했다. 덜렁거리는 케이블을 돌돌 말아 가방이나 옷깃에 위트 있게 연출하는 Z세대의 소비 패턴이 데이터로 입증됐다.

저스틴 비버부터 뷔·카리나까지

사진=저스틴 비버 인스타그램 갈무리
사진=저스틴 비버 인스타그램 갈무리
이 같은 흐름에는 2000년대 세기말 감성을 뜻하는 'Y2K 팝 미학'이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팝스타 저스틴 비버가 이끄는 테크·스트리트 브랜드 '스카이라크(SKYLRK)'는 공식 발매 전부터 패션계를 흔들고 있다. 유닛에서 네온 불빛이 뿜어져 나오는 '발광(글로잉)' 효과에 보라색 이어팁, 네온 그린 케이블을 매치한 유선 이어폰으로, 아내 헤일리 비버와 카일리 제너가 일상 착용샷을 공개하자마자 문의가 쇄도했다.
사진=헤일리비버 인스타그램 갈무리
사진=헤일리비버 인스타그램 갈무리
국내에서도 방탄소년단(BTS) 뷔, 에스파 카리나 등 K팝 스타들이 무심하게 흰색 줄이어폰을 늘어뜨린 셀피를 SNS에 공유하며 불을 지폈다. 블루투스 기기 특유의 매끄러운 디지털 감성 대신, 귓가 아래로 길게 떨어지는 케이블 선이 무심하고 쿨한 아우라를 완성하는 핵심 포인트로 작용하고 있다.

충전 스트레스 해방·가성비…美 시장도 6년 만에 반등

사진=카일리 제너 인스타그램 갈무리
사진=카일리 제너 인스타그램 갈무리
유선 이어폰의 역주행은 감성뿐 아니라 실용적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배터리 방전 걱정 없이 언제든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무선 제품 대비 분실 위험이 낮다. 10만~30만 원을 호가하는 무선 이어폰에 비해 2만~3만 원대로 손쉽게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다는 점도 고물가 시대 실속을 챙기는 젊은 층을 파고들었다.

실제 시장조사업체 서카나 집계에 따르면 5년 연속 내리막길을 걷던 미국 유선 오디오 시장 매출은 지난해 반등에 성공한 뒤, 올해 초 6주간 전년 동기 대비 20% 급증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Z세대에게 줄이어폰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드러내는 액세서리"라며 "무채색의 화이트 케이블을 넘어 네온 컬러, 체인 등 과감한 디자인이 접목된 테크 기기 수요는 당분간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경 한경닷컴 기자 highse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