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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삼성맨, 경쟁사 이직했다가 3억 토해낼 판…무슨 일?
삼성전기 퇴사자, 경쟁사로 이직
3.4억 받고 '2년 취업제한' 약정에도
1년 만에 경쟁사 이직…소송 제기
반도체 업계 '이직 분쟁'으로 몸살
3.4억 받고 '2년 취업제한' 약정에도
1년 만에 경쟁사 이직…소송 제기
반도체 업계 '이직 분쟁'으로 몸살
A씨는 희망퇴직 대가로 지원금 3억4000만원을 지급받았다. 이 돈은 2년간 경쟁사로 전직을 금지하는 대신 지급되는 지원금의 성격을 띠기도 했다. 따라서 전직 금지 기간 중 경쟁사에 취업하면 지원금 전액을 반환하도록 했다. A씨는 영업비밀 보호 서약서도 함께 제출했다.
하지만 A씨가 낸 서약서는 1년 만에 휴지조각이 됐다. 그는 지난해 8월 삼성전기의 경쟁사에 취업했다. 퇴사일인 2024년 5월 기준으로 2년이 경과되기 전에 취업한 만큼 회사와의 서약 즉, 전직 금지 약정을 어긴 것이다.
삼성전기, 16년 경력 베테랑 퇴사자와 '소송전'
삼성전기는 A씨의 취업 사실을 인지하고 소송을 제기했다. A씨 상대로 희망퇴직 지원금 3억4000만원 전액을 반환하라는 취지의 전직 금지 대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3일 한경닷컴 취재에 따르면 소송을 맡은 수원지법 단독 양상익 판사는 최근 삼성전기 측 손을 들어줬다. A씨가 지원금 전액을 회사에 반환해야 한다고 판시한 것이다.법원이 이 같이 판단한 이유는 삼성전기와 A씨가 취업한 회사가 같은 제품을 제작하는 경쟁관계란 점이 명백해서다. A씨는 삼성전기에서 파워인덕터 관련 재료·공정개발 업무를 맡았다. 파워인덕터는 배터리에서 공급되는 전력을 반도체에 안정적으로 전달하는 전자부품. A씨가 삼성전기 퇴사 후 입사한 곳도 파워인덕터를 제조·판매한다.
A씨는 자신이 알고 있는 기술정보가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경쟁사 취업만으로 삼성전기 이익을 침해할 일이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법원은 영업비밀이 아니더라도 삼성전기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A씨는 16년간 파워인덕터 관련 노하우와 경쟁사 제품 간 장단점 같은 핵심 정보를 확보했다. 재판부는 이를 삼성전기 임직원이 아닌 한 외부에서 취득하기 어려운 정보들로 봤다.
양 판사는 "이러한 정보가 경쟁업체에 유출됐을 경우 경쟁업체는 삼성전기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생략하고 기술개발을 진행할 수 있는 이익을 얻게 되고, 이는 삼성전기에 상당한 손해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퇴사 직전 담당한 공법(권선형 공법)이 경쟁사 주력 생산품과 방식(박막형 공법)이 다르다고 주장했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23년까지만 해도 박막형 공법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했었다는 이유에서다. A씨가 경쟁사에 낸 이력서에도 박막형 공법 관련 경력이 적혀 있다.
양 판사는 "A씨가 수령한 지원금은 퇴직 당시 A씨 통상임금의 약 39.3개월분에 달하는 거액"이라며 "전직 금지 기간을 2년으로 정한 것은 기술정보·노하우의 시간적 가치, 경쟁사 연구·개발 및 양산 주기, 제품의 시장 출시 일정 등을 고려하면 과도하게 장기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이직 분쟁'에 소송도 일상화…삼전닉스도 '골머리'
반도체 업계에선 A씨 사례과 같은 '이직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경우 회사 입장에선 소송에서 완승을 거두고도 이미 핵심 정보가 넘어간 이후여서 승소를 통해 얻는 실익도 적다. 법원에서 주로 언급하는 '자금과 노력'을 통해 얻은 성과가 퇴사자의 이력서 한 장으로 손쉽게 유출되는 형편이다.A씨만 해도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 공은 수원고등법원으로 넘어갔다. 삼성전기는 여전히 경쟁사에서 일하고 있는 A씨를 상대로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최근 대법원에선 중국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 SK하이닉스의 이미지센서반도체(CIS) 공정 기술을 빼돌린 전직 직원에 대해 징역 1년6개월이 확정됐다.
삼성전자를 퇴사한 직원 2명은 퇴직 후 1년6개월간 SK하이닉스와 계열를 비롯해 취업이 막혔다. 삼성전자는 이들이 SK하이닉스로 이직하자 소송을 제기해 이 같은 법원 판결을 받아냈다. 삼성전자에서 28년간 일하다 중국 창신메모리(CXMT)로 이직한 직원이 구속 기소 사례도 업계 안팎에 충격을 줬다.
견제구 던지는 기업들…"약정 단계부터 리스트 덜어야"
전문가들은 전직 금지 약정 단계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취업제한 기간을 지나치게 길게 잡거나 별다른 보상 없이 전직 금지 약정을 체결할 경우엔 법원이 이를 무효로 판단할 수 있다. 직업선택의 자유와 충돌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지나치게 길지 않은 기간을 설정하고 합리적 보상을 제시해 무효화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이번 소송에서 삼성전기를 대리한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퇴사자가 회사에서 어느 정도 지식을 갖고 있고, 어떤 지위에서 어떤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토대로 경쟁사에 갈 경우 회사에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게 중요하다"며 "예컨대 2~3년 차 실무자급에게 전직 금지 약정을 걸어 놓고 취업을 막으면 약정이 무효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 과정에선 퇴사자가 기존에 수행했던 업무와 경쟁사에서 맡는 역할 사이의 연결고리를 최대한 입증하는 것이 관건이다. 수사기관도 아닌 회사가 이를 입증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간접적 사실들을 모아 연결고리를 증명해야 법정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다.
최근 기업들은 승소 여부와 무관하게 최대한 경쟁사로 간 퇴사자를 상대로 '견제구'를 던진다. 취업제한 기간 내 경쟁사 이직 사실을 인지할 경우 즉시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제동을 거는 데 주력한다. 이후 삼성전기 사례와 같이 전직 금지 대금 반환을 청구하는 식으로 퇴사자를 압박한다. 이 같은 방식으로 경쟁사가 퇴사자를 기존 업무와 연관된 부서에 배치할 수 없도록 압박하려는 취지다.
권영환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보통 퇴사자의 경험, 머릿속에 있는 정보가 새로운 회사에서 활용되는 게 문제인데 옮긴 회사가 기술 수준이 낮았다가 갑자기 치고 올라왔다든지, 퇴사자가 알고 있는 기술의 고유성·난이도가 높다든지, '퇴사자의 기존 역할과 넘어간 회사에서의 담당 역할이 유사하다'와 같은 간접적 사실들로 (전직 금지 약정의 유효성과 손해배상 책임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영/홍민성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