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농장인 줄 알았는데 '반전'…10년간 조용히 판 키웠다 [현장+]
지달달 29일 전북 고창군 상하면의 상하농원. 드넓은 텃밭과 목장 사이로 공방과 식당, 카페가 이어지고 그 너머에는 호텔과 수영장, 스파, 글램핑장이 자리 잡고 있다. 농장 한편에는 1만5000평 규모 수목원까지 들어섰다. ‘농장’보다는 하나의 작은 마을에 가깝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상하농원에서 생산되는 돼지고기는 소시지와 베이컨이 되고, 계란과 꿀은 카스텔라로 다시 태어난다. 완성된 제품은 바로 옆 식당의 식재료가 되거나 파머스마켓에서 팔린다. 방문객은 직접 소시지와 빵을 만들고 동물에게 먹이를 준 뒤 농원 안 호텔에서 하루를 묵을 수도 있다.

상하농원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생산→가공→체험→소비→숙박’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구조다. 농·축·수산업인 1차산업에 제조업인 2차산업, 관광·서비스업인 3차산업을 결합한 이른바 ‘6차산업’이다.

상하농원은 농림축산식품부와 고창군, 매일유업이 공동 투자해 조성했다. 2008년 첫 삽을 뜬 뒤 8년간 준비해 2016년 4월 문을 열었다. 현재 전체 부지는 약 3만5000평에 달한다. 올해로 개장 10년을 맞았다. 상하농원은 올해 ‘10주년 숙성된장’ 등 기념 상품도 내놓고 있다.
전북 고창군 상하면 상하농원에서 아기 돼지들이 우리 안을 돌아다니고 있다. / 사진=권용훈 기자
전북 고창군 상하면 상하농원에서 아기 돼지들이 우리 안을 돌아다니고 있다. / 사진=권용훈 기자

돼지고기가 소시지 되고 계란은 카스텔라로

상하농원의 핵심 시설 중 하나는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공방이다. 단순히 완제품을 가져다 파는 매장과 다르다. 원재료가 실제 상품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는 일종의 ‘보이는 식품공장’이다. 현재도 주말을 중심으로 방문객이 공방을 돌며 농산물이 가공식품으로 변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가이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햄공방에서는 국내산 무항생제 돼지고기를 90% 이상 넣어 소시지와 햄, 베이컨 등을 만든다. 베이컨은 7일간 염지하고 소시지는 돈장·양장 등 천연 케이싱에 속을 채운다. 카스텔라공방에선 상하농원 계란과 국내산 아카시아꿀을 사용하고 편백나무 틀에 반죽을 구워낸다.

발효공방에는 또 다른 시간이 흐른다. 유기농 콩과 3년 이상 간수를 뺀 천일염을 이용해 된장을 만들고 숙성 기간에 따라 제품을 달리한다. 참기름은 저온 압착 방식으로 짠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은 농원 안 식당에서 다시 식재료로 쓰이거나 파머스마켓과 온라인몰을 통해 판매된다.
전북 고창군 상하면 상하농원 내 상하카페. 상하농원에서 만든 소시지를 활용한 핫도그가 대표 메뉴다. / 사진=권용훈 기자
전북 고창군 상하면 상하농원 내 상하카페. 상하농원에서 만든 소시지를 활용한 핫도그가 대표 메뉴다. / 사진=권용훈 기자
상하농원의 사업 모델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농민이 농산물을 출하하는 순간 부가가치 창출이 끝나는 기존 농업과 달리 가공과 외식, 유통까지 이어지도록 했다. 상하농원은 고창 지역 농가와 계약을 맺고 농민들이 재배한 농산물과 지역 특산물을 공방과 식당, 파머스마켓 등에 공급하고 있다.

예컨대 고창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그대로 팔면 ‘농산물 가격’만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잼이나 소시지, 장류로 만들어 판매하면 제조업의 부가가치가 붙는다. 소비자가 농원까지 찾아와 체험 프로그램에 돈을 내고 식사를 하고 숙박까지 하면 관광·서비스 매출이 다시 더해진다. 한 명의 관광객에게 농산물을 한 번 파는 게 아니라 여러 단계에서 소비하도록 만드는 구조다.

‘당일치기 농장’에서 ‘머무는 농장’으로


상하농원이 지난 10년 동안 가장 적극적으로 확장한 분야도 ‘체류 시간’이다. 2018년에는 41개 객실을 갖춘 호텔 ‘파머스빌리지’를 열었다. 이후 50m 길이의 야외수영장과 노천탕을 갖춘 스파를 추가했고, 2021년에는 13개 동 규모의 글램핑 시설도 문을 열었다. 농장 체험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저녁을 먹고 잠을 자고 다음 날까지 머물도록 만든 것이다.

현재 파머스빌리지 숙박객에게는 상하농원 입장과 스파, 조식 등이 함께 제공된다. 테라스룸부터 온돌룸, 패밀리룸, 단체룸까지 객실도 세분화돼 있다. 최근에는 ‘일하는 사람’까지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전북 고창군 상하면 상하농원에서 양들이 우리 안을 돌아다니고 있다. / 사진=권용훈 기자
전북 고창군 상하면 상하농원에서 양들이 우리 안을 돌아다니고 있다. / 사진=권용훈 기자
지난해 상하농원과 고창군은 약 97평 규모 공유오피스형 워케이션 공간인 ‘파빌리온’을 열었다. 1층 워크라운지와 2층 회의실·집중형 워크스테이션·방음부스 등을 갖췄다. 농촌 관광의 고객을 가족 단위 관광객에서 기업 워크숍과 워케이션 수요로 넓힌 셈이다.

상하농원 전체가 처음부터 완성된 것도 아니다. 농원에 숙박시설이 붙고, 수영장과 스파, 글램핑이 들어서고, 다시 수목원과 업무 공간이 추가되는 방식으로 10년간 계속 덩치를 키웠다. 지금은 파머스마켓과 공방, 식당뿐 아니라 동물농장·양떼목장·스마트팜·저수지 수변데크까지 한 공간에 들어가 있다.
전북 고창군 상하면 상하농원 내 야외 사우나에 마련된 온탕. / 사진=권용훈 기자
전북 고창군 상하면 상하농원 내 야외 사우나에 마련된 온탕. / 사진=권용훈 기자

10년간 키웠지만…아직 남은 ‘수익성’ 숙제


상하농원이 6차산업의 대표 사례로 꼽히지만 사업적으로 완전히 답을 찾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상하농원은 지난해 매출 324억3000만원을 올렸다. 2024년 315억6000만원보다 늘었지만 지난해에도 20억3000만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24년 영업손실 41억원보다는 적자 폭을 크게 줄였으나 아직 흑자 전환에는 이르지 못했다.
전북 고창군 상하면 상하농원 파머스빌리지의 야외 수영장. / 사진=권용훈 기자
전북 고창군 상하면 상하농원 파머스빌리지의 야외 수영장. / 사진=권용훈 기자
농업과 제조업, 관광업을 한데 묶는 만큼 운영 난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농산물 가격과 작황을 관리하면서 식품 생산시설을 돌려야 하고 동시에 식당과 호텔, 체험시설까지 운영해야 한다. 관광객이 몰리는 계절과 그렇지 않은 시기의 격차도 극복해야 한다.

그럼에도 상하농원이 10년째 실험을 이어간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농촌에서 생산한 상품을 도시로 보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소비자를 농촌으로 직접 불러들여 먹고, 사고, 체험하고, 자게 하는 것이 이곳의 사업 모델인셈이다.

고창=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