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켐, 2500억 CB 조기상환 위험 벗어나...2029년까지 만기 연장 합의
이차전지 전해액 전문기업 엔켐이 채권자들과 합의해 24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을 삭제했다. 당장 오는 11월로 다가왔던 대규모 상환 압박에서 벗어나며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서 일단 벗어나게 됐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엔켐은 이날 제14회 무보증 사모 CB 사채권자집회를 열어 조기상환청구권 삭제 등을 뼈대로 하는 조건 변경 안건을 의결했다.

해당 CB는 2024년 11월 2500억원 규모로 발행됐다. 현재 미상환 잔액이 2382억 원에 달한다. 전환가격은 11만2700원이지만, 현재 엔켐 주가는 2만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주식으로 전환하는 순간 80%에 달하는 손실을 입게 되는 만큼, 오는 11월 29일 풋옵션 효력이 발생하면 채권자들의 상환 요구가 대거 몰릴 것으로 관측됐다.

이에 엔켐은 풋옵션 권리를 삭제하고 상환 시점을 2029년까지 3년 연장하는 대신 담보와 추가 수익을 주는 방안을 제안했다. 만기수익률을 기존 연 3%에서 연 5% 중반으로 높이고, 올해 11월부터 3년간 매년 250억원씩 총 750억원 규모의 CB를 단계적으로 매입·소각하고, 미국 법인(엔켐아메리카)과 유럽 법인(폴란드·헝가리) 지분을 담보로 제공하겠다는 방안도 담았다.

일부 채권자들은 엔켐이 제시한 담보물의 실질 가치를 따져봐야한다는 우려를 제기했으나, 결국 사채권자회의에서 안건 통과에 필요한 찬성표가 나왔다.

풋옵션이 삭제되면서 엔켐은 당면한 유동성 고비를 넘기게 됐다. 엔켐은 자금 조달 창구를 다각화하며 재무 구조 개선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지난 6월 중국 신화(SHINGHWA)사 지분 매각으로 490억원을 회수한 데 이어 비핵심 자산 매각을 순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 엔켐아메리카와 나스닥 상장사 더그로우허브의 합병을 통해 최소 2억달러(약 2817억원)를 단계적으로 조달하겠다는 구상도 이어가고 있다.

다만 단기적으로 재무 리스크를 해소하기엔 만만치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6월 말 기준 엔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61억원에 불과하다. 반면 유동부채는 5735억원으로 유동자산(3144억원)보다 2500억원 이상 많다. 전해액 설비투자에 대규모 외부 차입이 투입된 상황에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인한 실적 부진이 장기화된 여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풋옵션 삭제로 단기 리스크는 소멸했지만, 본업 실적 회복과 제시한 자금 조달 계획의 차질 없는 이행이 향후 재무 안정성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