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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탄소 감축보다 기후 적응이 먼저다
화석에너지 퇴출 정책에 한계
냉방·치수 인프라부터 늘려야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냉방·치수 인프라부터 늘려야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세계는 한때 대응책으로 화석에너지 퇴출을 선택했다. 화석에너지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기후 변화의 핵심 요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상을 막겠다고 교내 축구를 금지하는 교각살우와 비슷하다. 물론 희망과 달리, 실현은 불가능해 보인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기술의 한계다. 인류는 석탄으로 철강을, 천연가스로 비료를, 석유로 수송연료와 플라스틱을 생산하며 현대 문명을 건설했다. 아직 이를 완전히 대체할 기술이 없다. 성급한 화석에너지 퇴출은 곧장 철강, 비료, 플라스틱, 의약품 등의 부족으로 이어져 현대 문명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다.
둘째는 전환 규모다. 2025년 세계 화석에너지 소비는 석유 환산 약 123억t이다. 2050년까지 화석에너지를 퇴출하려면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140만t에 해당하는 화석에너지를 무탄소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원자력발전소 약 1.5기, 5㎿ 풍력터빈 약 1100기, 550W 태양광 패널 약 1900만 장에 해당한다. 간단한 산술만으로도 전환의 물리적 난도를 짐작할 수 있다.
셋째는 공유재의 비극이다. 대기는 특정 국가 소유가 아니라 지구 공유재다. 감축 비용은 개별 국가가 부담하지만, 편익은 세계가 나누는 구조다. 당연히 다른 나라가 감축하기를 기다리며 자신은 값싼 화석연료를 계속 쓰려는 유인이 생긴다.
이처럼 공유재가 남용되는 비극을 막으려면 소유권을 정하거나 강제력 있는 통제자가 있어야 하지만, 대기를 국가별로 나눌 수도 없고 세계 정부도 없으니 도리가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던 2009년과 2020년을 제외하면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꾸준히 증가했다. 반면 한국은 2018년 정점을 찍은 이후 배출량이 계속 줄고 있다. 석탄 발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린 결과다. 하지만 발전비용 상승과 철강, 석유화학 등 관련 산업의 경쟁력 저하라는 비용이 커지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줄여도 세계 배출량이 계속 늘어난다면 ‘도로 아미타불’이다.
물론 책임 있는 국가로서 감축 노력은 지속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글로벌 탄소중립의 실패 가능성에 대비한 적응 정책이 훨씬 더 중요한 이유다. 홍수에 대비해 제방을 보강하고 냉난방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등 대책의 효과는 더 직접적이다. 이는 국민을 지키는 보험이며, 정부가 책임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기후정책일 수 있다.
‘지구가 아파요’라는 감성적 구호 아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탄소 감축에 매달리고 정작 우리 국민을 지킬 냉방, 치수, 방재 인프라 점검을 소홀히 하는 것은 ‘지구와 함께 아프자’는 방식이다. 반도체 용수 공급에 필수적인 하천 댐은 기후 변화 적응 능력 향상에도 기여한다. 환경단체 등이 주장하는 댐 건설 취소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기후정책은 이제 탄소 감축이라는 이상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로 한발 더 내려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