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 위치한 칭화대 캠퍼스의 정문. /사진=김정욱 기자
베이징에 위치한 칭화대 캠퍼스의 정문. /사진=김정욱 기자
중국 인공지능(AI) 기업들이 미국의 자본력과 첨단 반도체 우위를 빠르게 추격하는 배경에는 칭화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인재·연구 네트워크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칭화대 출신 연구자들이 창업과 오픈소스를 통해 기술을 빠르게 공유하면서 중국 AI 산업 전체의 기술 개발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어서다.

24일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 AI 모델이 빠르게 성장한 배경에 칭화대의 연구 인프라가 있다. 칭화대가 배출한 중국 AI 연구자들이 학계와 기업을 오가며 일종의 ‘가상 실리콘밸리’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지푸AI와 문샷AI는 이런 생태계를 상징하는 기업이다. 두 회사의 창업자인 탕제와 양즈린은 칭화대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탕제 지푸AI 창업자는 칭화대 교수 시절 오전 3시까지 머신러닝을 연구하며 연구실을 운영했다. 그 제자 가운데 한 명이 양즈린 문샷AI 창업자였다. 두 사람은 이후 중국을 대표하는 AI 기업 창업자로 성장했다.

출발점은 2000년대 초반이다. 당시 중국 인터넷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수백만 명이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했고 기업들은 전자상거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머신러닝에 투자했다. 중국 정부도 주민 감시 등에 활용할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 적극적으로 자금을 투입했다. 이 과정에서 자금과 인재가 중국의 대표 이공계 대학인 칭화대로 몰렸다.

당시 만들어진 연구·교육 기반은 이후 중국 AI 인재를 배출하는 토대가 됐다. 칭화대에서 최상위 컴퓨터과학 인재를 육성하는 ‘야오반’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 성장한 연구자들은 중국과 미국의 주요 기술기업으로 진출해 경험을 쌓았다. 미국에서 유학하거나 근무한 뒤 중국으로 돌아온 인재들도 늘면서 현지 AI 생태계의 저변이 넓어졌다.

중국 정부는 대학의 연구 성과를 기업으로 연결하는 길도 열었다. 2018년 대학 연구자들이 직접 기업을 설립하고 자체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완화했다. 이듬해 탕제는 자신의 칭화대 연구실에서 지푸AI의 모태가 된 회사를 분사했다.

미국 카네기멜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중국으로 돌아온 양즈린도 이후 문샷AI를 출범시켰다. 대학에서 형성된 연구자 인맥이 창업과 투자, 기술 교류로 이어지는 중국판 실리콘밸리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같은 생태계는 미·중 AI 경쟁에서 중국의 추격 속도를 높이는 동력이 됐다는 분석이다. 자금력에서는 중국 기업들이 미국 경쟁사에 크게 뒤처지고 미국의 대중 수출통제로 최첨단 AI 칩을 확보하는 데도 제약받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이런 한계를 기술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돌파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딥시크다. 딥시크는 멀티헤드 잠재 어텐션(MLA) 등의 기술을 활용해 AI 모델 구동에 필요한 메모리 사용 부담을 크게 낮췄다. 이후 관련 기술이 문샷AI 등 경쟁 업체로 빠르게 확산하면서 중국 AI 업계 전반의 기술 개발 속도도 빨라졌다.

업체 간 지식 확산 속도도 빠르다. 연구 성과를 공개하고 누구나 내려받아 수정할 수 있도록 하는 오픈소스 문화가 자리 잡은 영향이다. 문샷AI가 딥시크가 개발하거나 효과를 입증한 기술을 자사 모델에 적용하고, 반대로 딥시크가 문샷AI가 최적화한 기술을 활용하는 등 업체 간 기술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다만 최첨단 반도체와 자본력에서는 여전히 미국 AI 기업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WSJ은 평가했다. 중국의 추격이 아직 진행형인 이유다. 탕제는 지난달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누구든 기술적 한계를 단 한 치라도 먼저 밀어 올리는 쪽이 전 산업의 판도를 새로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리 기자 miri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