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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 칼럼] 말러의 '부활'에 복수는 없다
유대인 작곡가로 당한 차별
혐오·보복 대신 사랑으로 채워
김수미 음악 칼럼니스트
혐오·보복 대신 사랑으로 채워
김수미 음악 칼럼니스트
유대인인 말러는 반유대 정서가 노골적으로 들끓던 19세기 말을 살았다. 교향곡 2번 부활 1악장에도 씁쓸한 일화가 얽혀 있다. 처음에 이 곡은 장례식이라는 제목의 단독 교향시로 작곡됐다.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엄숙하면서도 격렬한 스케일이 특징적인, 도입부부터 청중의 가슴을 뛰게 하는 작품이다.
말러는 당대 최고 지휘자이자 음악평론가인 한스 폰 뷜로에게 작품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었다. 피아노로 이 곡을 들려줬을 때 뷜로에게서 돌아온 반응은 ‘양손으로 귀를 막는 것’이었다. “만약 지금 내가 들은 게 음악이라면 난 아마도 음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겠지.”
뷜로가 귀를 막은 이유가 음악의 지나친 급진성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뷜로는 관계 초반에는 다소 적대적이었지만 차츰 말러의 지휘 능력을 높이 샀다고 전해진다. 다만 그가 훗날 극심한 반유대주의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말러가 감내해야 한 적대의 성격을 음악적 취향 문제로만 단순하게 정의하기는 어려워진다.
작곡을 포기할 생각까지 한 말러는 5년가량 지난 1893년, 이 작품을 교향곡으로 발전시켜 2, 3, 4악장을 작곡한다. 그러나 도무지 적절한 피날레가 떠오르지 않아 난관에 부딪혔다.
그러던 중 다시 뷜로와의 사건이 벌어진다. 그가 카이로에서 급서한 것이다. 말러는 함부르크 교회에서 열린 뷜로의 장례식에서 막혀 있던 아이디어의 물꼬를 튼다. 소년합창단이 노래한 ‘다시 일어나라, 그래, 그대는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짧은 안식이 끝나면 먼지 같았던 내 육신은 부활할 것이다’라는 소절이 그 계기였다.
누스바움은 말러 개인의 삶을 말미암아 이 교향곡에 악행과 대립이라는 주제를 도입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 음악과 긴밀하게 얽혀 있는 뷜로가 말러에게는 분노의 대상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5악장에는 심판이나 응징이 없다. 분노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그저 다른 부드럽고 아름다운 무언가로 전환될 뿐이다.
작곡가가 직접 쓴 해설에 따르면 이 작품의 마지막 악장 속 진노의 날은 보편적인 이미지와 다르다. “이것은 심판이 아니다. 죄인도, 의인도 없다. 누구도 크지 않고 누구도 작지 않다. 어떤 처벌도 보상도 없다. 압도적인 사랑이 우리의 존재를 밝힌다.”
타인을 증오하는 데 소중한 시간을 소진하는 대신 나 자신과 내가 진정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에 그 에너지를 다시 쏟아붓는 것. 이 또한 죽어있던 삶의 감각을 깨우는 가장 역동적인 방식의 부활이며, 자신을 가장 온전히 사랑하는 법이다.
이런 삶이 정말 가능할지 의구심이 들 때 말러의 음악은 그 어떤 정교한 논리보다 강력한 설득력을 발휘한다. 모든 악기와 목소리가 찬란한 광휘를 뿜어내는 마지막 3분의 피날레를 듣고 있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하지만 확실한 믿음 하나가 싹을 틔운다. 혐오와 보복이라는 허망한 환상에 더 이상 나를 내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분노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다는 단단한 확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