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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세·U2무대 만든 그녀…서울에 경계 없는 집 짓다
에스 데블린, 북촌 푸투라서울서 국내 첫 개인전
1만권 채워진 서가
거울로 가득찬 미로
모르는 사람 그리기
상호작용이 가능한
체험형 연출로 구성
내년 1월까지 전시
1만권 채워진 서가
거울로 가득찬 미로
모르는 사람 그리기
상호작용이 가능한
체험형 연출로 구성
내년 1월까지 전시
그런 그가 시각예술가로 서울에 왔다. ‘세계적 무대 디자이너의 미술 나들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난 10년간 그가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등 유수의 미술관에서 37번의 전시를 열며 세계적인 미술 작가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20일 서울 북촌의 전시 공간 푸투라서울에서 개막한 ‘세 번째 시: 에스 데블린, 다시 집으로’는 그의 국내 첫 개인전이다. 2년을 들여 준비했고, 모든 작품을 서울에서 새로 제작했다. 데블린을 만나 이번 전시와 작품세계에 관해 들었다.
‘빛의 선’ 따라온 40년
데블린은 세 살 무렵 런던 템스강에 빠지는 사고를 당했다. 강에 가라앉으며 물속에서 올려다본 빛줄기. 익사 직전의 어린아이에게 그 ‘빛의 선’은 삶의 상징으로 각인됐다.이후 데블린은 줄곧 빛의 선이라는 주제를 통해 삶의 즐거움 그리고 생명이라는 기적에 감사를 표현해 왔다. “제게 무대와 미술은 별개의 장르가 아닙니다. 지난 40년간 형태를 바꾸고 다듬으며 빛의 선이라는 주제를 일관적으로 표현해 왔어요. 그러니 비욘세의 무대 디자이너라는 소개는 기억에서 지워도 됩니다(웃음).”
영상 속 서가가 열리면 탄성이 터져 나온다. 거울로 지은 미로가 관람객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울 속에 내 모습이 없다. 대신 옆 사람, 그 뒤 낯선 사람의 얼굴이 잡힌다. “누구나 거울에 다가설 때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자기가 안 보이면 놀라게 되고, 아이로 돌아간 듯한 즐거움을 느끼죠.” 데블린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을 때 사진 작가님이 보였고,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이 보였어요. 우리가 이상한 방식으로 서로 이어져 있다는 걸 알아보고 웃음이 났어요.”
직후 관람객은 데블린이 넉 달간 그린 서울의 생물 250종을 타원형으로 배치한 설치 작품 ‘다시 집으로’를 만난다. 북촌, 북악산, 인왕산에 사는 각종 새와 곤충. 이들의 소리와 8개 언어로 노래하는 합창 소리가 방 안에 흐른다. “조사해 보니 서울에는 약 6000종의 생물이 살더군요. 인간은 그중 한 종에 불과합니다. 다른 시민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마음을 열고, 주변을 사랑하세요”
설치 작품을 타원형으로 설치한 데도 이유가 있다. 데블린에게 타원은 얼굴의 형태다. 그는 오래전부터 ‘얼굴 그림’으로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영국에 들어온 난민들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 연작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지금도 런던 국립초상화미술관에서는 그가 제작한 인공지능(AI) 초상화 연작을 전시 중이다. 데블린은 “사람은 문패가 아니라 자기를 알아봐 주는 얼굴 앞에서 비로소 집에 왔다고 느낀다”며 “이웃인 다른 종(種)의 모습, 타인의 얼굴을 보며 ‘서울의 이 종들이 곧 내가 돌아갈 집이며 나 자신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느껴 달라”고 말했다.
전시의 클라이맥스는 그 앞에 놓인 기다란 테이블이다. 관람객은 이곳에서 맞은편에 앉은 모르는 사람과 서로의 얼굴을 15분간 그리게 된다. 대화는 금지된다. 데블린은 “이 테이블이 사실상 전시의 전부고, 나머지는 이 순간을 위한 연출”이라고 말했다.
“그림 실력은 상관없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는 점을 떠올려 보세요.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그리며 당신 안에 떠오르는 것, 당신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진짜 작품입니다. 저는 당신이 그 변화와 만나도록 판을 깔아줄 뿐이에요.”
한 번뿐인 귀중한 삶을 타인과 나누고, 이 지구를 다른 생물과 사이좋게 함께 쓰자는 것. 예술의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돼 온 이 주제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느낄 수 있는 전시다. 경계를 넘나드는 데블린의 능수능란한 솜씨 덕분이다. 데블린이 관람객에게 남긴 부탁은 하나다. “아무것도 모르고 오세요. 다만 시간을 충분히 들여 보세요.” 전시는 내년 1월 17일까지, 관람권은 2만2000원.
※에스 데블린의 심층 인터뷰와 화보집은 아르떼매거진 9월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