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구글랩에서 열린 행사에서 한 여성이 구글 로고가 표시된 대형 스크린 옆을 걷고 있다. 사진=AP
파리 구글랩에서 열린 행사에서 한 여성이 구글 로고가 표시된 대형 스크린 옆을 걷고 있다. 사진=AP
아마존과 구글 모회사 알파벳 등 빅테크의 대규모 외화채 발행이 캐나다와 스위스, 영국 등 상대적으로 작은 회사채 시장을 흔들고 있다. 이들 빅테크가 현지 우량 회사채 시장의 가격과 장기채 공급 구조를 좌우하는 '큰 손'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14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빅테크들은 올해 들어 스위스프랑과 영국 파운드, 캐나다달러 등으로 채권 발행을 확대하며 새로운 자금 조달원을 확보하고 있다. 알파벳은 올해 캐나다 시장에서 85억캐나다달러를 조달해 당시 역대 최대 규모 회사채 발행 기록을 세웠고, 몇 주 뒤 아마존이 140억캐나다달러 규모 채권을 발행하며 기록을 갈아치웠다. 두 회사는 스위스프랑 채권도 대규모로 발행했고 알파벳은 영국 파운드 시장에서 이례적인 만기 100년짜리 채권까지 내놨다.

현지 시장과 비교하면 발행액이 너무 크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캐나다에서 AA 등급 회사채의 국채 대비 금리 차가 신용등급이 한 단계 낮은 A등급 지수보다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마존과 알파벳이 모두 포함된 최우량 회사채에 공급이 몰리면서 같은 신용등급 회사채의 가격 기준까지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얼라이언스번스타인의 수헤이르 아스바 크레디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하이퍼스케일러가 소규모 시장에 들어오면 우량채의 만기별 금리 체계가 통째로 다시 짜인다"고 말했다.

장기물 시장에서는 다른 기업의 자금 조달이 제한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도이체방크의 스티브 카프리오 유럽·미국 크레디트 전략 책임자는 "빅테크의 미국 외 시장 진출이 다른 기업의 채권 발행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며 "기업들이 원하는 만큼 장기채를 발행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도이체방크는 유럽의 낮은 성장률과 정치적 위험에 더해 빅테크의 유로화 채권 공급이 회사채 금리를 끌어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대비 유럽 투자등급 회사채의 투자 비중을 낮추라고 권고했다. 유로화 시장은 미국 달러 시장만큼 대규모 물량을 받아줄 투자자층이 얇다는 판단이다.

영국 파운드 시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무지니치의 이언 혼 크레디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파운드화 장기채의 조달 비용이 단기채에 비해 높아진 데에는 빅테크의 장기물 발행이 일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빅테크의 실적 발표 일정도 회사채 시장의 주요 변수가 됐다. 시장 규모가 작은 지역에서 채권을 발행하려는 기업에는 빅테크가 대규모 발행에 나설 때 투자자 관심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는 금리보다 발행 일정에 미친 영향이 더 컸다. UBS의 마누엘 가디엔트 스위스 채권자본시장·신디케이트 책임자는 "빅테크가 스위스프랑 채권을 발행한 직후 회사채 금리가 일시적으로 올랐지만, 시장 전반의 조달금리를 지속해서 끌어올리지는 않았다"면서 "빅테크 발행 직후 채권을 내놓으려던 기업들이 일정을 늦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쏠림도 새로운 위험으로 떠올랐다. S&P에 따르면 현재 스위스 투자등급 회사채 지수에서 아마존과 알파벳은 7.7% 비중을 차지한다. 아스바는 "두 회사 가운데 한 곳에 문제가 생겨도 미국보다 규모가 작은 스위스 시장이 훨씬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수를 따라 투자하는 펀드도 소수 빅테크에 대한 투자 비중이 빠르게 커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빅테크의 AI 투자 자금 수요가 유로와 파운드, 스위스프랑 시장으로 얼마나 더 확산할지가 관건이다. 이 과정에서 장기 투자등급 회사채의 금리가 얼마나 오르고, 소수 빅테크에 대한 시장 쏠림이 어느 수준까지 심화할지도 주목된다.

오세성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