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방배동 방배13구역 재건축사업 조합원 1500여 명은 5년 넘게 집을 떠나 생활하고 있다. 아파트 2228가구를 지어 올해 입주할 계획이었지만, 2021년 이주한 뒤 아직 착공도 하지 못했다. 종교시설과의 갈등과 오염토 정화 문제에 이어 최근 시공사인 GS건설이 공사비를 올려달라고 요구하면서 갈등이 깊어졌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현장에서 공사 지연이 잇따르고 있다. 10일 서울시에 따르면 300가구 이상 정비사업지 336곳 가운데 공사 중인 곳은 32곳에 불과하다. 북아현2구역 등 27곳은 2020년 이전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받고도 착공하지 못했다. 관리처분계획 인가 후 사업이 3년 이상 미뤄진 사업장도 12곳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공사비 상승, 조합 갈등, 이주비 대출 규제를 ‘3대 리스크’로 꼽는다. 서울 정비사업 공사비는 2021년 3.3㎡당 578만원에서 지난해 890만원으로 급등했다. 이무송 대한건설협회 신사업실장은 “공사비 부담과 각종 규제가 사업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집 비운 지 5년 넘었는데 첫삽도 못떴다"…서울 재건축 '비명'

정비사업장 착공 지연에 민간 주택공급 위축
아파트 입주 물량 1.8만가구 그쳐…규제 강화·공사비 급등 겹친 영향

지난해 서울에서는 아파트 3만5891가구가 입주했다. 이 가운데 86%인 3만905가구는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통해 공급됐다. 하지만 사업 지연을 겪지 않은 단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서초구 방배6구역을 재건축한 ‘래미안 원페를라’(1097가구)는 2018년 이주를 시작했지만 2022년에야 착공했다. 성북구 장위4구역 재개발 사업인 ‘장위자이 레디언트’(2840가구)도 2017년 이주를 마친 뒤 첫 삽을 뜨기까지 5년이 걸렸다.

이 같은 사례는 지금도 서울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해관계가 복잡한 정비사업 특성상 소송과 갈등이 잇따르는 데다 공사비 상승과 금융 규제가 겹쳐 사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공급 속도전을 강조하지만 현장에서는 민간 주택 공급이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착공 늦어지는 단지 수두룩

10일 서울시에 따르면 300가구 이상을 공급하는 서울 정비사업지는 336곳(47만3678가구)이다. 이 가운데 공사가 진행 중인 곳은 32곳(4만3638가구)에 불과하다. 절반가량인 17곳(2만365가구)은 지난해 이후 착공해 입주까지 최소 2~3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시공사를 선정하고도 수년째 착공하지 못한 사업장도 적지 않다. 2017년 GS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 서초구 방배13구역(2228가구)은 2021년 이주를 시작한 뒤 구역 내 교회 2곳과의 보상 갈등으로 사업이 2년 가까이 지연됐다. 지난해에는 오염토 정화업체 선정 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며 조합장이 교체됐다. 올해는 시공사와의 공사비 협상까지 난항을 겪고 있다. 한 조합원은 “5년째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며 “분담금은 크게 늘었고 조합원은 10년 가까이 타지 생활을 해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관악구 신림2구역(1487가구)도 2021년 이주를 마쳤지만 아직 착공하지 못했다. 교회 이전과 설계 변경으로 사업이 늦어진 데 이어 지난 6월 조합장과 임원이 모두 해임됐다. 사업 지연으로 분양 부담이 커지며 내부 갈등이 확대된 결과다. 새 집행부 구성과 공사비 협상을 다시 해야 해 올해 착공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 입주 절벽 현실화

서울의 ‘입주 절벽’은 현실화하고 있다. 정보업체 프롭티어와 KB부동산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8273가구로, 1990년(1만8395가구) 이후 36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당시 안전 진단 강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분양가 상한제 등 규제와 공사비 급등 영향이 누적된 결과로 보고 있다.

최근에는 규제 완화 기조가 일부 후퇴하면서 현장 부담이 다시 커지고 있다. 이주비 대출 규제가 대표적이다. 서대문구 북아현2구역(2320가구)은 2008년 조합 설립 이후 18년 만인 올해 4월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았지만, 11월 이주를 앞두고 조합원 상당수가 기존 이주비 대출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시공사 보증을 통한 추가 대출이 검토되고 있지만 지원 규모는 불확실하다.

공사비 상승도 변수다. 서대문구 홍제3구역(620가구)은 공사비를 인상한 지 2년 만에 다시 증액 협상에 들어갔다. 시공사는 지난 1일 조합에 3.3㎡당 공사비를 784만원에서 876만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설계 변경 등을 반영하면 총공사비는 2765억원에서 3086억원으로 11.6%(321억원) 증가한다.

업계에서는 정비사업 지연이 장기화할 경우 서울의 신규 아파트 공급 부족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정비사업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이해관계자 간 갈등이 잦아지고 있다”며 “사업성이 양호한 지역은 규제를 합리화하고 외곽 지역은 공공이 사업 진행을 지원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근호/유오상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