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튀르키예 등 이슬람 수니파 3국이 공동 방위 협정을 체결했다. 세 나라는 이란과 국경을 맞대거나 인접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이란 전쟁으로 미군의 중동 내 역할이 재조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란에 대한 억지력을 구축하기 위해 힘을 모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우디와 파키스탄, 튀르키예 정상은 지난 7일 사우디 메카에서 협정을 맺었다. 3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모든 침략 행위에 대한 집단적 억지력을 강화하기 위해 조약을 체결했다”며 “조약 체결 3국 중 어느 국가에 대한 무력 공격도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명시했다.

이번 합의는 사우디와 파키스탄이 지난해 9월 맺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식 상호방위협정’을 확대한 성격이다. 양국은 올해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중동 정세가 요동치자 역내 군사강국인 튀르키예를 협정에 참여시키는 방안을 협의해 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국 협력을 통해 사우디의 오일머니와 튀르키예의 방위산업 생산능력, 파키스탄의 전투 경험 등이 결합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튀르키예는 나토 내 2위 규모의 군사력을 보유했고 파키스탄은 이슬람권에서 유일한 핵보유국이다.

튀르키예 정부 당국자는 이번 조약을 두고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며 “다른 역내 국가에도 열려 있고 기존의 양자 또는 다자간 협정을 파기하거나 대체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올해 이란 전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이란 중심의 ‘이슬람 시아파 벨트’와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이스라엘을 견제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동안 이란과 후티반군 등 대리 세력은 사우디를 공격하고 에너지 운송로를 봉쇄했다. 튀르키예는 이슬람권에서 가장 강력하게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국가 중 하나다.

미국의 중동 안보 수호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우디와 튀르키예는 전통적으로 미국을 주요 안보 파트너로 여겨왔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자국 우선주의와 동맹국의 자체 방위 강조 기조에 따라 지역 국가 사이에서 대안을 모색하게 됐다. 부르주 외즈첼리크 런던 왕립합동군사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번 합의가 역내 국가들이 더 큰 안보 부담을 떠맡아야 한다는 미국의 방향과도 맞는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 같은 지역 동맹 강화는 중동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안드레아스 크리그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부교수는 “수조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고도 미국이 이란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우선 보호하는 모습에 걸프 국가들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집트 등 다른 중동 수니파 국가가 조약에 추가 합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집트는 올초 사우디, 튀르키예, 파키스탄과 함께 ‘4자 외교 안보 협력체(R4)’를 결성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