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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악가들이 완성한 '링 시리즈'의 드라마 '니벨룽의 반지'
[리뷰] 8일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 '니벨룽의 반지' 하이라이트
15시간짜리 원작을 속도감있게 235분 압축...4부작을 한편으로
115인조 오케스트라가 뿜어낸 바그너의 신화적 음악
15시간짜리 원작을 속도감있게 235분 압축...4부작을 한편으로
115인조 오케스트라가 뿜어낸 바그너의 신화적 음악
지난 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객석에 들어서자마자 무대를 채운 압도적 스케일이 관객을 사로잡았다. 4대의 하프와 두 조의 팀파니가 가세한 대편성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아드리앙 페뤼숑, 그리고 정상급 성악가들까지 총 142명이 손을 잡고 거대한 신화의 세계를 펼쳐놓았다.
장장 4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었지만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다.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그프리트', '신들의 황혼'으로 이어지는 핵심 장면을 한자리에서 만난 관객들은 매 작품이 끝날 때마다 폭발적인 박수와 함성을 쏟아냈다.
한국 성악가들이 증명한 '한국산 반지'의 가능성
첫 작품 '라인의 황금'부터 대형 오케스트라의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극저음에서 출발한 라인강의 모티브는 음과 화음을 켜켜이 더하며 거대한 음향의 흐름을 형성했다.
바그너 음악의 핵심인 '라이트모티프(Leitmotif·주도동기)'는 단순한 주제 선율을 넘어선다. 황금, 반지, 검, 발할라, 영웅, 저주 등 인물과 관념에 음악적 표식을 부여한 뒤 극의 전개에 따라 이를 변형하고 결합한다. 성악가가 노래하지 않는 순간조차 오케스트라는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암시하며 '또 하나의 화자'로 존재감을 발휘한다.
무대를 채운 한국 성악가들의 기량 또한 압도적이었다. 보탄 역의 바리톤 최인식과 도너 역의 바리톤 김기훈은 우렁찬 음색과 자연스러운 연기로 신들의 세계에 무게감을 더했다. 특히 김기훈은 신화 속 망치를 소품으로 활용하며 당당한 주신(神)의 면모를 각인시켰다.
마지막 '신들의 황혼'은 군터(김기훈), 지그프리트(김재형), 브륀힐데(이명주), 하겐(사무엘 윤)이 어우러져 비극의 절정을 이뤘다. 욕망으로 시작된 저주가 지그프리트의 죽음과 브륀힐데의 장엄한 희생을 거쳐 신들의 세계가 파멸하는 결말로 치달을 때의 몰입감은 단연 최상이었다.
알베리히에서 하겐까지...4부작 관통한 사무엘 윤의 존재감
이날 바그너의 '총체예술(Gesamtkunstwerk)' 개념을 무대 위에서 가장 설득력 있게 구현한 이는 단연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이었다. 그는 1부 '라인의 황금'에서 탐욕에 사로잡힌 알베리히를, 4부 '신들의 황혼'에서는 그 아들 하겐을 연기했다. 저주를 시작한 아버지와 그 저주를 완결 짓는 아들을 한 인물에게 맡겨 4부작의 수미상관을 완성한 것은 이번 캐스팅의 가장 영리한 수였다.
115명이 쏟아낸 황금빛 사운드...'웰 메이드 자막'의 승리
지휘자 아드리앙 페뤼숑은 115인조의 대음향을 정교하게 제어하며 성악가들의 호흡을 완벽하게 받쳤다. 특히 지그프리트의 시신이 운구될 때 울려 퍼진 장엄하고 비통한 '장송행진곡'은 단연 이날 연주의 하이라이트였다.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전막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한 관객의 평처럼, 이번 하이라이트 공연은 15시간짜리 바그너의 거대한 우주로 관객을 이끄는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본 공연은 오는 14일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한 차례 더 관객을 찾아간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