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의 디코드 차이나] 주문 태블릿과 QR코드
요즘 식당에는 테이블마다 주문 태블릿이 놓여 있다. 인건비를 줄이려고 도입했는데, 설치비와 수수료가 만만치 않다는 자영업자의 불만도 적지 않다. 중국 식당도 무인 주문 방식이 대세다. 그런데 태블릿은 거의 볼 수 없다. 테이블 구석에 붙어 있는 QR코드로 주문과 결제가 끝난다. 고객의 스마트폰이 태블릿을 대신하는 셈이다.

한국에도 QR코드 주문 시스템이 있고, 상당수는 무료로 제공된다. 그런데 거의 쓰이지 않는다. 신용카드 중심의 결제 습관이 굳어져 QR 기반 주문과 결제가 확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생태계의 차이다.

QR코드 키운 모바일 생태계

카카오톡과 위챗은 모두 국민 메신저다. 두 나라 국민 대부분이 쓴다. 그런데 진화 방향은 달랐다. 카카오톡이 메신저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확장했다면, 위챗은 결제와 미니프로그램(플랫폼 안에서 설치 없이 구동되는 앱)을 품으며 생활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쇼핑, 교통, 식당 주문, 숏폼, 행정서비스까지 일상의 모든 영역을 연결했다. 위챗 이용자의 하루 평균 사용시간은 약 80분 안팎으로, 카카오톡의 세 배가 넘는다.

[김영수의 디코드 차이나] 주문 태블릿과 QR코드
연결 고리가 QR코드였다. QR코드는 일본에서 개발됐지만, 중국에서 모바일 결제 인터페이스로 사용되며 본격적으로 확산했다. 2015년 춘제 홍바오(세뱃돈) 프로모션을 계기로 2억 장의 은행카드가 위챗페이에 연결됐다. 2017년 미니프로그램이 출시되면서, QR코드는 결제 수단을 넘어 디지털 서비스의 입구로 자리 잡았다. 소비자는 앱을 따로 설치할 필요가 없고, 상인도 별도 단말기 없이 주문과 결제를 처리할 수 있다. QR코드가 혁신을 만든 것이 아니다. 모바일 생태계가 QR코드를 혁신으로 이끌었다.

AI에도 동일한 공식 적용

중국은 이제 그 공식을 AI에 적용한다. 지난 7월 열린 상하이 세계인공지능대회(WAIC)가 그 무대였다. 개막 전날 29개국이 상하이에 본부를 두는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 설립 협정에 서명했다. 중국은 오픈소스 생태계 확대와 AI 접근성 제고, 국제 표준의 연계 및 조율을 전면에 내세웠다. 모델과 칩의 성능 경쟁을 넘어 더 큰 판을 깔겠다는 선언이다. 위챗이 QR코드로 상인과 소비자를 끌어들였듯, 중국은 오픈소스 전략으로 전 세계 개발자와 기업을 자국 모델 및 표준에 연결하려 한다. 자율주행 택시 등 AI 서비스를 해외로 수출하며 기술 표준 선점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AI 경쟁의 전선이 모델 성능에서 생태계로까지 넓어지는 것이다.

한국도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과 ‘모두의 AI’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해외 모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모델을 확보해 국민이 쉽게 쓰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필요한 일이다. 다만, 통제권이 단절을 뜻해선 안 된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뛰어난 모델 하나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 모델과 개발자, 기업과 서비스를 폭넓게 연결하는 생태계를 설계하는 데 있다. 연결되지 못한 AI는 결국 또 하나의 주문 태블릿이 될 수 있다.

김영수 베이징대 한반도연구센터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