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만 찾는 데 익숙했던 건축학도가 구마 겐고라는 거장을 만나 유연하게 손을 움직이고 귀를 여는 사람으로 성장하기까지. 세계적 건축가의 곁에서 15년간 함께 호흡하며 몸으로 익힌, 기술보다 오래 살아남는 ‘건축가로서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

나는 사실 일본에 오기 전까지 구마 겐고의 건축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일본 건축가라면 안도 다다오를 더 좋아했고, 당시 대부분의 건축학도처럼 유럽 건축에 좀 더 마음이 가 있었다. 일본에 온 이유도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한국이 아닌 곳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조금은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내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결국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편도 티켓 한 장만 들고 일본으로 왔다. 지금 생각하면 도피에 가까운 유학이었다. 일본어 학교에서 보낸 1년은 ‘자유’라는 단어를 처음 체감한 시간이었다. 햄버거를 들고 신주쿠교엔 잔디밭에 앉아 일본어 숙제를 하다가 그대로 낮잠을 자곤 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이었다.

구마 겐고와 대만의 Windeaves 현장을 함께 둘러보는 필자. 이승준 제공
구마 겐고와 대만의 Windeaves 현장을 함께 둘러보는 필자. 이승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