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 신작 매출 비중 2년째 하락
지난해 출시작 절반 평가 낮아
메이플스토리 1분기 매출 42%↑
국내외 게임 산업에서 신작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인공지능(AI)이 게임 개발의 문턱을 낮춰 출시작이 급증하고 있지만, 매출은 검증된 기존 작품과 장수 지식재산권(IP)에 더 집중되고 있다. 게임사 입장에선 기존 IP 수익성 극대화와 수백억원의 개발 비용 및 막대한 인력이 들어가는 신작 투자 사이에서 자본 배분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I로 만든 신작 피하는 유저들
19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알리니아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세계 최대 PC 게임 플랫폼 스팀의 올 상반기 게임 매출은 111억달러로 전년 동기(97억달러)보다 14.5% 증가했다. 반기 기준 역대 최대다. 반면 해당 연도에 출시된 신작의 상반기 매출 비중은 21%로 2024년(29%), 2025년(27%)에 이어 2년 연속 하락했다.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지만 매출은 기존 출시작에 더욱 쏠린 셈이다.
이 같은 매출 흐름은 신작 게임이 늘어나는 현상과는 정반대다. 지난해 스팀 출시 신작은 2만1394개로 생성형 AI 확산 이전인 2021년(1만1223개)의 약 2배에 달했다. 게임 엔진과 유통 플랫폼의 접근성이 높아진데다 생성형 AI가 코딩·음악·번역 등에 활용되면서 소규모 개발팀의 제작 속도가 빨라진 영향이다.
게임 숫자가 많아질수록 검증된 작품으로 수요가 몰리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출시는 쉬워졌지만 이용자에게 ‘발견’되기 위한 문턱은 오히려 높아졌다는 의미다. 지난해 12월 중순까지 스팀에 출시된 게임 1만9112개 가운데 9327개(48.8%)는 이용자 평가가 10건에도 못 미쳤고, 2229개(11.7%)는 평가를 한 건도 받지 못했다.
특히 AI로 빠르게 양산한 저품질 게임인 ‘AI 슬롭’이 늘면서 신작을 피하는 경향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비슷한 이미지와 서사, 낮은 완성도의 게임이 반복 노출되자 평가와 운영 이력이 검증된 게임을 고르게 됐다는 것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AI로 만든 듯한 비슷한 게임이 잇달아 노출되면서 이용자가 신작을 일단 의심하고 있다”며 “초기 평가 수와 동시접속자, 업데이트 이력 등을 확인한 뒤에야 구매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개발보다 자본배분 중요해져”
줄어든 파이를 두고 자연스레 신작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소 개발사부터 직접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 대형 게임사는 위험을 분산하고 기존 IP를 활용할 수 있지만 중소 개발사의 경우 한 작품의 실패가 인력 감축이나 차기작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한 중소 게임사 대표는 “AI로 개발 비용은 아꼈지만, 제대로 된 게임이라는 걸 증명하고 초기에 이용자를 끌어오기 위한 마케팅 비용은 과거보다 몇 배 커졌다”며 “출시 초반 반응을 얻지 못하면 제대로 평가 받기도 전에 묻혀 차기작은 꿈도 못 꾼다”고 했다.
대형 게임사도 신작의 흥행 불확실성 속에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펴고 있다. 신작의 사업성을 조기에 검증하고 유망 프로젝트에 자본을 집중하려는 움직임이다. 넥슨은 지난 3월 포트폴리오 점검을 거쳐 세 개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사업성을 확인한 나머지 두 개에는 투자를 확대했다. 동시에 검증된 IP 수익성을 극대화하면서 2003년 출시된 메이플스토리 프랜차이즈 매출은 올 1분기에 전년 동기보다 42% 늘었다.
엔씨도 지난해 신작 실시간전략게임(RTS) ‘택탄’의 개발을 중단했다. 평가 결과 사업성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해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핵심 개발진의 경험은 차기 프로젝트에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게임 업체들의 생존 전략이 신작 개발에서 자본 최적화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AI 시대 게임 업체의 경쟁력은 단순 출시작 수가 아니라, 유망 신작을 선별해 개발하고 흥행작을 장수 프랜차이즈로 키우는 자본 배분 능력에서 갈릴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