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게 국내 주식을 순매도한 연기금이 매수 우위로 돌아섰다. 코스피지수가 조정받으면서 리밸런싱을 위해 처분해야 할 물량이 줄어든 영향이다. 정해진 물량을 기계적으로 쏟아내기보다 지수와 시장 유동성에 따라 매도 규모와 속도를 조절하는 운용 방식이 수급으로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연기금 등은 유가증권시장(ETF·ETN·ELW 포함)에서 약 1396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코스피지수가 기록적인 낙폭을 보인 지난 13일에는 851억원어치를 순매도했지만, 하루 만에 이를 웃도는 물량을 사들이면서 이번주 누적 수급도 545억원어치 안팎의 순매수로 돌아섰다. 지난주에도 917억원어치를 순매수해 지난 4월 하순 이후 11주 만에 주간 매수 우위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연기금 등 수급의 상당 부분을 사실상 국민연금의 매매 흐름으로 본다. 매도 압력이 약해진 배경에는 자산 배분 기준 변경과 지수 조정이 동시에 자리 잡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7월 리밸런싱 유예 종료를 앞두고 올해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을 14.9%에서 20.8%로 높였다. 전략적자산배분(SAA) 허용 상단도 19.9%에서 26.8%로 확대해 기계적으로 처분해야 할 잠재 물량을 줄였다.
여기에 지난달 9114.55까지 오른 코스피지수가 이달 들어 7000선으로 밀리면서 국내 주식 평가액과 전체 기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함께 낮아졌다. 국민연금의 리밸런싱 물량은 처음부터 정해진 고정값이 아니다. 국내외 주식과 채권 가격, 환율이 움직일 때마다 비중을 다시 계산하기 때문에 고점에서 산출한 초과 물량도 지수가 내려 허용 범위 안으로 들어오면 모두 처분할 필요가 없어진다.
유예 종료 전부터 물량을 분산한 점도 부담을 덜었다. 연기금 등은 5~6월 유가증권시장에서 약 5조36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국민연금은 6월부터 국내 주식 비중 조정에 나선 데 이어 새 지침에 따라 초과분을 수개월에 걸쳐 해소할 수 있게 됐다. 유예 종료 뒤 물량을 한꺼번에 내놓기보다 지수와 유동성에 맞춰 매도 강도를 조절하는 구조다.
일각에선 시장 충격을 줄이는 데 치중하다가 상승장에서 국내 주식 비중을 낮출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급등장에서 목표 비중을 높이고 매도 속도를 늦춘 결과 지수가 조정받은 뒤에야 리밸런싱 부담이 줄어든 만큼 장기 수익률과 위험 분산이라는 자산 배분 원칙에 충실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승장에서 적정 비중을 회복할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닌지 별도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