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원훈 인스타그램
/사진=김원훈 인스타그램
"제 성격이 원래 그렇지 않은데, 어딜 가나 '긁어주는 멘트를 해달라'고 요구하시니 당황스러울 때가 많아요. 사실 저는 남을 긁는 것보다 차라리 제가 조롱당하고 놀림받는 게 훨씬 편하고 재밌습니다."

얄밉지만 묘하게 빠져드는 매력, 이른바 타인을 '긁는(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연기의 달인으로 불리는 희극인 김원훈의 말이다. 2015년 KBS 30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해 '개그콘서트' 폐지라는 뼈아픈 시기를 견뎌낸 그는, 동료 조진세, 엄지윤과 함께 결성한 유튜브 채널 '숏박스'로 이른바 '하이퍼리얼리즘 코미디'의 신드롬을 일으키며 단숨에 대세 반열에 올랐다.

특히 11년 차 장수 커플의 현실을 담아낸 '장기연애'부터 현대 직장인들의 애환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SNL코리아' 시리즈의 '직장인들'까지 그의 섬세한 생활 밀착형 연기는 MZ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최근엔 각종 예능, 광고계까지 섭렵하며 데뷔 이래 가장 뜨거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사진=유튜브 채널 '숏박스'의 '장기연애'
/사진=유튜브 채널 '숏박스'의 '장기연애'
'장기연애'의 진짜 결말, 그리고 '숏박스'라는 안식처

최근 '숏박스' 팀은 큰 화제를 모았던 '장기연애' 콘텐츠의 마침표를 팬미팅 현장에서의 '가상 결혼식'으로 장식했다. 김원훈은 당시를 회상하며 콘텐츠에 대한 진심과 파트너 엄지윤에 대한 미안함을 동시에 전했다.

"팬미팅 때 저희가 진짜로 결혼하는 줄 아셨던 분들이 많아서 '결혼 축하한다'는 인사를 엄청 받았어요. 숏박스의 시작을 알린 소중한 콘텐츠였기에 그 끝도 팬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며 마무리하고 싶어 두 달간 진짜 결혼식처럼 준비했습니다. 저는 이미 결혼을 한 상태라 두 번째 결혼식 느낌이라 수월했지만, 지윤이에게는 너무 미안했어요. 인생의 첫 번째 결혼식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답게 하고 싶었을 텐데, 콘텐츠를 위해 억지(?)로 식을 올리며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현타를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수많은 매체에서 끊임없이 러브콜이 쏟아지지만, 김원훈에게 변함없는 0순위는 '숏박스'다. 최근 채널의 성장과 함께 더 넓고 쾌적한 사옥으로 이사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그는 "일주일에 3~4일은 진세, 지윤이와 회의하고 촬영하며 보낸다"며 "다른 방송을 훌륭하게 해내야 숏박스도 살아남는다는 마음으로 임하지만, 결국 가장 마음이 편하고 애정이 가는 안식처는 숏박스"라며 끈끈한 의리를 과시했다.

"개인 스케줄로 숏박스를 못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최대한 맞추면서 하고 있어요. 각자가 유명해져야 '숏박스가 살아남는다'고 해서 서로를 응원하는 것도 있고요. 하루살이처럼 해요. 이번 주에 찍으면 이번 주에 올리는 경우도 있고. 소재 고갈, 창작의 어려움. 요즘 최대 난제가 대본 회의예요."

'긁는 캐릭터'의 이면, 악플의 무게를 견디는 법

대중에게는 능글맞고 얄미운 캐릭터로 각인되어 있지만, 실제 김원훈은 타인의 시선과 반응에 섬세하게 영향을 받는 성격이다. 특히 치솟는 인기와 함께 필연적으로 따라온 악플은 그에게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그렇게 절 놀리고 조롱하는 게 차라리 좋아요. 그런데 막상 악플을 보면 상처를 받습니다. '어글리 코리안' 같은 비아냥도 어떻게든 재미로 승화시켜보려 하지만, 노이즈를 만드는 게 무서워져서 점점 겁쟁이처럼 몸을 사리게 돼 답답하기도 해요. 아내도 제게 '절대 댓글 보지 마라'고 신신당부하죠."

대중에게 조금이라도 덜 밉보이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자기 관리에도 철저하다. 살이 찌면 특유의 날렵하고 얄미운 캐릭터 느낌이 반감될까 봐 1일 1식을 고수하고, 턱과 이마에 보톡스를 맞으며 피부 관리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는 유쾌한 고백도 덧붙였다.
/사진=메타코미디
/사진=메타코미디
"수십 년 무관왕도 즐겁다"

'SNL코리아'가 휴식기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올해에만 벌써 6~7개의 광고를 촬영하며 달라진 위상을 실감 중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콩트 연기의 70% 이상을 이미 보여줬다고 평가한 김원훈의 다음 목표는 '리얼 버라이어티'다.

"제 부캐나 캐릭터 연기가 아닌, 일상에서 제가 대화하고 노는 자연스러운 모습 자체가 재미있게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평소 이경규, 신동엽, 유재석 선배님을 정말 존경하는데, 언젠가 저보다 기가 훨씬 센 선배님들을 모시고 여행을 떠나는 예능을 해보고 싶습니다. 저보다 약한 분들은 놀릴 재미가 없거든요.(웃음)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 곁에서 안 들어봤을 법한 엉뚱한 질문들을 던지며 깐족거리고 싶어요."

다가오는 청룡시리즈어워즈 노미네이트에 대해서도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을 뽐냈다. 유재석, 신동엽 등 쟁쟁한 후보들 사이에서 수상을 기대하기보단, 일찌감치 카메라에 잡힐 '탈락 리액션'을 치밀하게 짜고 있다고.

"수십 년이 지나도 '무관왕' 타이틀로 남는 저의 모습도 하나의 훌륭한 개그 소재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나 자신을 온전히 다 갈아 넣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큰 상을 받고 싶습니다. 그 전까지는 마음껏 조롱당하고 놀림감이 되어도 좋습니다. 그게 바로 제가 코미디를 하는 이유니까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