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AIO미술관에서 열린 김병종 개인전 <판타지 오브 라이프(Fantasy of Life)> © AIO
광저우 AIO미술관에서 열린 김병종 개인전 <판타지 오브 라이프(Fantasy of Life)> © AIO
아시아 최대 미술 시장을 가진 중국에서 한국 작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중 수교 35주년 기념의 해를 일 년 앞두고, 김병종 작가의 전시가 광저우 AIO미술관에서 시작되어 화제를 모았다. 베이징, 상하이, 선전과 더불어 중국 4대 도시인 광저우에서도 K-현대미술이 주목 받고 있다. 한국화에 바탕을 둔 김병종 작가의 전시 <판타지 오브 라이프(Fantasy of Life)>가 6월 27일부터 7월 27일까지 AIO에서 열리는 것.

상하이에 와이탄(外滩)이 있다면, 광저우에는 샤미엔(沙面)이 있다. 근대 건축물이 밀집한 광저우 샤미엔지역의 유일한 현대 미술관 AIO에서 김병종 작가의 전시가 6월 27일부터 7월 27일까지 열린다. 주강(Pearl River) 앞에 위치한 샤미엔은 19세기 아편 전쟁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조계지였다. 그 영향으로 유럽 스타일로 지어진 150채의 아름다운 근대 건축물들이 남아 있어, 지금은 호텔, 회사, 레스토랑, 교회, 카페 등으로 쓰이고 있다.
김병종 개인전 <판타지 오브 라이프(Fantasy of Life)>가 열린 AIO미술관 외관 © 이소영
김병종 개인전 <판타지 오브 라이프(Fantasy of Life)>가 열린 AIO미술관 외관 © 이소영
1914년에 지어진 건물에 들어선 AIO(Art Institute of Orient)는 홍콩의 사업가 도로시 웡성킹 (Dorothy Wong Sung King) 회장이 인수해 1층은 카페 ‘플레르’, 2층은 전시장, 3층과 4층은 아티스트 레지던시로 사용 중이다. 과거에는 은행과 호텔로 이용됐었다고 한다. 도로시 회장은 한국 현대 미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번 전시를 계기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허정선 관장)과 MOU 협약도 맺었다. 두 기관은 앞으로 전시 기획과 미술교육 분야에서 지속적인 문화 교류를 추진할 계획이다.

“AIO는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는 샤미엔의 역사적 건축물에 자리한 문화예술기관입니다. 1914년 프랑스 인도차이나은행 지점으로 건립한 건물을 복원한 공간이지요. 현재는 국제 전시와 미술 교육을 통한 문화 교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병종 화백은 한국 현대미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가이기에, 중국 미술 애호가에게 한국 미술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어서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도로시 회장은 홍콩과 중국을 넘나드는 부동산 개발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제는 교육 기관의 수장으로서 국제 문화 교류에 이바지하고 있다. 광저우에서의 오랜 활동을 인정받아서 광저우 명예시민이 되었다. 그녀가 광저우에 설립한 유타로이 국제학교 광저우(UISG)는 카팩스 교육(Carfax Education)에서 ‘세계 150대 학교’에 선정되었다.

광저우에서 만난 김병종 작가는 중국과의 인연을 떠올리며 감동에 잠겼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14년 중국 베이징 진르미술관에서 열린 초대전 이후 10여 년 만에 중국에서 개최되는 것이라 감회가 새롭다.
김병종 개인전 <판타지 오브 라이프(Fantasy of Life)>에서 김병종 화백 © AIO
김병종 개인전 <판타지 오브 라이프(Fantasy of Life)>에서 김병종 화백 © AIO
“2014년 전시는 신화통신을 비롯한 24개 중국 주요 언론이 취재에 참여했으며, 중국 국영방송 특별 프로그램에서는 중앙미술학원 자오리 교수가 진행한 작가 인터뷰가 방송되기도 했지요. 더불어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서울대학교를 방문했을 때, 그림 ‘서울대학교 정문 설경(瑞雪)’을 선물로 드렸던 추억도 있습니다. 두 그루의 붉은 소나무가 서로 얽혀 있는 서울대학교 정문을 묘사한 풍경화입니다. 두 소나무는 한국과 중국을 상징하며, 두 나라가 나무들처럼 연대를 굳건히 하기를 바라는 미술가의 마음을 담았지요.”

AIO는 100년이 넘은 근대 건축물이지만, 완벽한 복원 공사를 마쳤기 때문에 안팎이 수려하다. 150채의 근대 건축물이 위용을 뽐내는 샤미엔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다. 전시 포스터가 걸린 1층 카페를 지나서 2층으로 올라가면 전시장이 펼쳐진다. AIO 곳곳에는 여전히 벽난로가 남아 있는데, 서재와 응접실을 개조한 전시장에 걸려 있는 김병종 작가의 한국화 작품들이 서구적 건축물과 잘 어울린다. 전시장 입구에는 대형 작품, 과거의 흔적을 담은 작은 방들이 이어진 안쪽 전시장에는 작은 그림을 걸었다.
김병종 개인전 <판타지 오브 라이프(Fantasy of Life)> 전시 전경 © AIO
김병종 개인전 <판타지 오브 라이프(Fantasy of Life)> 전시 전경 © AIO
<판타지 오브 라이프>는 김병종 작가가 평생 추구해 온 '생명의 미학'을 선보이는 전시다. 꽃과 나무, 자연의 순환,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품들은 한국화의 미감과 현대적 감각을 동시에 보여준다. <생명의 노래> 연작을 중심으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와 삶에 대한 긍정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소개했다. 작품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꽃과 생명의 형상들은 관람객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했다.

몇 년 전부터 새롭게 선보인 <풍죽> 연작도 매력적이다. <풍죽> 연작은 바람이 지나간 대나무 숲을 그린 풍경인데, 추상에 가까우면서도 고고한 선비의 지조를 담은 한국적 정취가 돋보인다. 파란색 <풍죽> 연작에서는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검은색 작품 역시 학자의 기품이 느껴진다. 두 가지 연작은 모두 간결하지만 강렬한 색채로 근대 건축물 전시장의 우아함과 잘 어울린다.
김병종 개인전 <판타지 오브 라이프(Fantasy of Life)> 전시 전경 © AIO
김병종 개인전 <판타지 오브 라이프(Fantasy of Life)> 전시 전경 © AIO
전시는 김주영 큐레이터와 파비앙 파코리(Fabien Pacory)가 공동 기획했다. 파비앙 파코리는 20여 년간 중국에서 활동하며 국제 문화 프로젝트를 기획해 온 프랑스 출신 문화 기획자이며, 이번 프로젝트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중국과 한국의 우정, 공유하는 예술적 유산을 기념하는 자리입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예술은 우리에게 보편적이고 영원한 것을 일깨워 줍니다. 김병종 작가의 시적이고 인간미를 담은 작품 세계를 통해 우리는 아름다움과 사색을 하나로 묶는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습니다. 광저우에서 열리는 이 전시가 아시아 문명의 이해와 예술의 힘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병종 개인전 <판타지 오브 라이프(Fantasy of Life)> 전시 전경 © 이소영
김병종 개인전 <판타지 오브 라이프(Fantasy of Life)> 전시 전경 © 이소영
김병종 개인전 <판타지 오브 라이프(Fantasy of Life)> 전시 전경 © AIO
김병종 개인전 <판타지 오브 라이프(Fantasy of Life)> 전시 전경 © AIO
이번 전시는 내년 한국ㆍ중국 수교 35주년 기념의 해를 앞두고 한국과 중국의 문화 예술 교류를 활성화하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시아 미술이 공유하는 자연과 인간성에 대한 담론을 확장하는 장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동아시아를 가로지르는 문화의 흐름은 예술과 전통의 교류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중국의 역사적 관문이자 홍콩과 마카오로 이어지는 남중국의 중심구인 광저우에서 21세기에도 이어지는 문화 교류는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김병종 화백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며, 지난 40여 년간 '생명'을 화두로 자연과 인간, 영성과 예술의 관계를 탐구해 왔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장과 서울대학교 미술관장을 역임했으며,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며 가천대학교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화의 전통적 정신을 현대적으로 확장한 예술 세계를 구축해왔다. <생명의 노래>, <바보 예수>, <송화분분> 등을 통해 동양적 사유와 생명력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자연과 인간, 영성의 관계를 탐구하는 그의 작품은 동양적 철학과 현대적 조형 언어가 결합된 독특한 예술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생동감 넘치는 색채와 서정적 형태를 통해 생명의 상호 연결성을 불러일으키고,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근대건축물이 150채 모여 있는 광저우의 샤미엔 풍경 © 이소영
근대건축물이 150채 모여 있는 광저우의 샤미엔 풍경 © 이소영
김병종 작가의 전시를 보고 나면 샤미엔을 산책해보자. AIO 건너편 근대 건축물에 들어선 민트색 스타벅스와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인 교회 두 곳이 특히 인기가 있다. 샤미엔은 낮에도 아름답지만 밤에도 야경이 근사하다. 멋진 사진을 촬영할 수 있기 때문에 해외 여행자뿐 아니라 광저우 시민들도 이곳을 즐겨 찾는다. 혼자 간 여행자를 겨냥해 디지털카메라로 멋지게 촬영해주는 사진가들도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다. 마주 보이는 주 강변을 산책하는 것도 낭만적이고, 샤미엔의 근대 건축물에는 경찰서도 들어서 있기 때문에 치안도 안전하다.

광저우=이소영 프리랜서 미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