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백남준의 거대 설치 작품 '다다익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백남준의 거대 설치 작품 '다다익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건립은 한국 미술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정표였다. 이전까지 경복궁·덕수궁에서 셋방살이를 하던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관 건립으로 처음 제대로 된 미술관다운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1986년 문을 연 이래 개최한 전시는 502회, 이곳을 다녀간 관람객은 약 2500만 명에 달한다. 2013년 서울 소격동에서 개관한 서울관에 '현대미술 중심지' 타이틀을 빼앗기긴 했지만, 여전히 과천관의 존재감은 굳건하다.

'MMCA 과천 40주년: 빛의 상상들'은 이런 과천관의 불혹(不惑)을 기념하는 전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빛'을 주제로 국내외 작가 9명의 작품을 고른 뒤 이를 로비와 전시실, 야외 조각공원 등에 전시했다. 전시실을 벗어나 관람객이 지나는 길목마다 작품을 배치한 게 특징이다.
필립 파레노, 〈마퀴〉, 2019, 투명 플래시 글라스, LED 조명, 네온, DMX 컨트롤러, 37x204x75cm
필립 파레노, 〈마퀴〉, 2019, 투명 플래시 글라스, LED 조명, 네온, DMX 컨트롤러, 37x204x75cm
로비에 들어서면 프랑스 작가 필립 파레노의 '마퀴'가 관람객을 맞는다. 극장 입구 전광판을 본뜬 작품으로, 입구에 선 관객에게 점멸하는 빛을 통해 무언가 시작될 듯한 기대감을 전한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이 이 작품을 기증받은 뒤 처음 일반 공개하는 자리다. 3층 브리지에는 미디어아티스트 김아영의 영상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가 유리창 밖 숲과 겹쳐지며 상영된다.

새로 꾸민 원형 전시실은 '빛의 거장' 제임스 터렐의 작품 '상상들, 넓은 직사각형의 곡면 유리'가 내뿜는 신비로운 빛으로 가득 찼다. 색은 2시간30분에 걸쳐 숨 쉬듯 천천히 바뀐다. 김유진 학예연구사는 "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미술관 발전후원위원회가 기증한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됐다. 네온과 거울로 착시 효과를 만들어 작품이 무한히 이어지는 듯한 광경을 연출하는 이반 나바로의 설치 작품들도 함께 놓였다.
제임스 터렐, 〈상상들, 넓은 직사각형의 곡면 유리(Imaginings, Wide Rectangular Curved Glass)〉, 2021, LED 조명과 스크림을 활용한 공간 설치, 182.9×304.8㎝, 2h30m, 국립현대미술관 발전 후원위원회(MDC)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제임스 터렐, 〈상상들, 넓은 직사각형의 곡면 유리(Imaginings, Wide Rectangular Curved Glass)〉, 2021, LED 조명과 스크림을 활용한 공간 설치, 182.9×304.8㎝, 2h30m, 국립현대미술관 발전 후원위원회(MDC)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반 나바로, 〈에코(벽돌)(Ecco(Brick))〉, 2012, 네온 조명, 벽돌구조물, 거울, 반투명거울, 혼합재료, 81×180×180㎝, AP11 (ed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반 나바로, 〈에코(벽돌)(Ecco(Brick))〉, 2012, 네온 조명, 벽돌구조물, 거울, 반투명거울, 혼합재료, 81×180×180㎝, AP11 (ed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과천관의 상징과도 같은 야외 조각공원에는 김하늘 등 작가 5명이 관람객이 직접 앉고 기대는 '앉는 조각 작품'을 만들었다. 수산시장에서 버린 폐스티로폼 상자로 만든 파란 소파 40개를 잔디밭에 늘어놓는 식이다. 감상의 대상이었던 조각을 친근한 대상으로 바꾸기 위한 시도다.

전시 관람 후에는 3~6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근현대미술 Ⅰ·Ⅱ'를 함께 둘러볼 만하다. 박수근·김환기 등 대표 작가들의 260점으로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훑는 상설전으로, 여러 번 반복해 관람할 만한 가치가 있다. 클로드 모네와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아이 웨이웨이 등 해외 거장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MMCA 해외 명작: 수련과 샹들리에'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두 나라의 미술 교류 80년을 정리한 '로드무비: 1945년 이후 한·일미술'도 함께 열리고 있다.
하지훈, 〈자리〉, 2026, ABS, 100x200x72cm(x7), 가변 설치, 국립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하지훈, 〈자리〉, 2026, ABS, 100x200x72cm(x7), 가변 설치, 국립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이 모든 전시를 과천관 통합관람료 3000원으로 감상할 수 있다. '빛의 상상들' 전시는 11월 29일까지. 터렐과 나바로의 작품은 내년 10월 31일까지 계속 만날 수 있다.

과천=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