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퇴직연금, 든든한 노후자금이 되려면
1년 전만 해도 이런 풍경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한동안 3000선도 넘기 힘들던 코스피 지수가 어느새 9000을 돌파했고, 하루에도 1000~2000포인트씩 오르내리는 일이 낯설지 않다. 카페에서도, 회사에서도 두 사람만 모이면 주식 이야기가 나온다. 예·적금에 머물던 여유자금도 빠르게 증시로 향하고 있다.

이런 투자 열풍 속에서 문득 궁금해졌다. 가입자 2000만명이 넘는 직장인의 퇴직연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2025년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처음으로 500조원을 넘어섰다. 연간 수익률도 평균 6.5%를 기록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투자방식이다. 아직도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의 70%이상은 원리금 보장형이지만, 근로자가 직접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에선 실적배당형 비중이 전년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퇴직연금 계좌를 통한 상장지수펀드(ETF)투자도 48조7000억원 수준으로 최근 3년 연속 100%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얼마 전 퇴직연금 자료를 보다가 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가입자 간 수익률 차이가 예상보다 훨씬 컸다. 사업주가 책임지고 운용하는 기존 퇴직금제도와 유사한 확정급여형 (DB)의 평균 수익률은 3.53%였지만, 가입자가 직접 운용하는 DC형은 8.47%였다. 더 놀라운 것은 상위 10%의 수익률은 19.5%였지만 하위 10%는 0.5%에 불과했다. 왜 이런 차이가 났을까. 상위 10%는 적립금의 84%를 실적배당형에 투자했고, 하위 10%는 74%를 원리금보장형으로 운용했다. 퇴직연금을 자기 책임하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운용하느냐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진다는 것이 통계로 입증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 방법을 알면서도 선택하지 않는 걸까. 최근 한 경제단체의 ‘직장인 퇴직연금 인식조사’에서 그 이유를 엿볼 수 있었다. 응답자의 57.1%는 “관심은 있는데, 잘 모른다”고 답했다. 관심은 충분하지만 정보가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퇴직연금에서는 상품보다 교육과 상담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법령상 사업주는 매년 1시간 이상의 퇴직연금 교육을 의무적으로 해야하지만 현실에서는 교육자료 한번 배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처음 퇴직연금을 가입할 때만이라도 투자 성향과 운용 방법을 설명하는 1대1 대면 교육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이 스스로 연금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서라도 연금을 받을 때 역시 대면 교육을 통해 일시금이 아닌 연금으로 받는게 왜 중요한지 가입자가 충분히 이해할 기회를 줘야한다.

많은 근로자들이 퇴직연금만큼은 노후 자산으로서 안전하게 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금보장만 생각하면 수익률을 높이기 쉽지 않다. 수익률이 높은 실적배당형 상품을 선택하더라도 위험을 줄이은 장기 투자다. 직장을 옮겨도 퇴직연금은 30여년 간 꾸준히 적립·운용하는 자산이다. 새로 도입되는 기금형 퇴직연금이 이러한 장기 운용 문화를 만드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