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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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부가 2030년까지 8,000억유로가 넘는 자금을 차입해 국방력 강화와 인프라 투자에 나선다. 러시아 안보 위협과 미국의 유럽 방위 역할 축소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 전략의 대전환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7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가 이끄는 독일 정부는 2030년까지 8,000억유로를 웃도는 국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2,000억유로 이상을 시장에서 조달할 예정으로, 이는 올해보다 12.5% 늘어난 규모다. 재무부 전망에 따르면 2027년부터 2030년까지 차입 규모만 8,380억유로에 달한다.

이번 예산안은 수십 년간 유지해온 독일의 재정 긴축 원칙을 사실상 뒤집는 조치다. 특히 1990년대 독일 통일 이후 대규모 재정지출을 제외하면 메르츠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CDU)이 강조해온 재정건전성 기조에서 가장 큰 변화로 평가된다.

추가 차입금의 대부분은 국방비 확대에 투입된다. 독일의 국방예산은 내년 1,090억유로로 늘어난 뒤 2030년에는 1,836억유로까지 증가할 예정이다. 독일 정부는 내년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으로도 116억유로를 배정하기로 했다.

이 같은 재무 전략은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지속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공약을 축소할 가능성이 제기된 데 따른 대응으로 풀이된다. 메르츠 총리 취임 이후 독일은 국방비를 헌법상 '부채 브레이크'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헌법을 개정해 군사 목적 차입을 사실상 제한 없이 허용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사회민주당(SPD)과의 연립정부 합의를 통해 12년간 5,000억유로 규모의 인프라 기금을 조성했다. 이 자금은 교량과 도로, 철도, 병원, 학교, 에너지 보급망 현대화에 투입된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2027년에만 약 550억유로를 인프라 투자 재원으로 조달할 계획이다.

그러나 대규모 차입 계획을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다. 특히 CDU 내부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정부 시절 볼프강 쇼이블레 전 재무장관이 추진했던 균형재정 원칙인 '슈바르체 눌(검은 제로)'를 사실상 포기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라르스 클링바일 재무장관은 "독일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맡은 책임을 이행하고 있다"며 "푸틴의 제국주의적 야망으로 유럽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고 밝혔다.

재무부는 독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내년 69.5%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이는 여전히 유로존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재정적자는 GDP 대비 4.3%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다.

독일 정부는 올해 NATO의 국방비 목표인 GDP 대비 2%를 넘길 것으로 예상했으며, 핵심 군사비를 GDP의 3.5%까지 확대하는 새로운 목표도 2029년에 달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기존 계획보다 6년 앞당긴 일정이다.

정부의 경기부양책은 미국의 관세 인상과 미국 주도 이란 분쟁으로 높아진 에너지 비용 충격을 일부 완화하는 효과를 냈지만, 유럽 최대 경제인 독일의 성장세를 본격적으로 되살리지는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가채무 증가에 따른 이자 부담 역시 빠르게 커지고 있다. 정부는 연간 이자 지출이 내년 420억유로에서 2030년에는 810억유로로 거의 두 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독일산업연맹(BDI)은 이번 차입 규모를 "우려스럽다"고 평가했다. 기계·설비업계를 대표하는 VDMA도 "기록적인 예산이 잇따르면서 독일의 재정 기반이 막대한 부채로 한계까지 확대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