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대 값' 컴퓨터 뜯던 소년…30년 넘게 '코딩' 못놓는 이유 [권용훈의 직업불만족(族)]
1991년께 중학교 1학년이던 고인석 제타럭스시스템 대표(사진)의 아버지가 큰마음을 먹었다. 아들에게 당시 400만원이 넘는 삼성전자 컴퓨터를 사줬다. 웬만한 소형차 한 대 값이었다. 아버지는 “차 한 대를 사준 거나 마찬가지”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다음날 아침, 고 대표의 아버지는 뒷목을 잡았다. 새 컴퓨터가 산산이 분해돼 있었던 것. 범인은 아들이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 본체를 열고 부품을 모조리 뜯어낸 것이다. 다행히 며칠 뒤 그가 다시 조립한 컴퓨터는 멀쩡하게 켜졌다.

고 대표는 “그 모습을 본 아버지가 ‘얘는 나중에 컴퓨터로 먹고살겠구나’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고 웃었다. 아버지의 예상은 맞았다. 30여 년 뒤 그는 디지털트윈과 공간정보 기술을 개발하는 정보기술(IT) 기업의 사장이 됐다.

다만 그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천재 개발자의 성공담’과는 조금 다르다. 한 번에 크게 성공한 적도, 대규모 투자를 받아 회사를 단숨에 키운 적도 없다. 대신 하고 싶은 일을 정한 뒤에는 옆길로 새지 않았다. 대학을 끝까지 마치지 못해도 개발을 계속했고, 직장을 9년 다니면서도 창업의 꿈을 놓지 않았다. 2012년 퇴직금 800만원으로 회사를 차린 뒤에는 외부 투자 없이 15년을 버텼다.
고인석 제타럭스시스템 대표의 유년 시절 모습.
고인석 제타럭스시스템 대표의 유년 시절 모습.

스티브 잡스 자서전 읽던 소년의 꿈

고 대표의 관심은 어릴 때부터 한곳에 꽂혀 있었다. 컴퓨터였다. 1990년대 초부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C를 혼자 익혔고 시간이 나면 전자기기를 뜯었다가 다시 조립했다. 당시 애플을 떠나 새로운 컴퓨터 회사 ‘넥스트’를 세운 스티브 잡스와 마이크로소프트를 키우던 빌 게이츠의 이야기도 찾아 읽었다. 이미 성공한 기업가라기보다 컴퓨터 기술 하나로 새로운 회사를 만들던 창업가들의 모습에 끌렸다.

학교 공부에 매달리는 학생도 아니었다. 교과서보다 컴퓨터를 붙잡고 있는 시간이 많아서다. 그래서 교사들에게는 공부와 거리가 먼 학생처럼 보이기도 했다. 중학생 때는 그가 국어 시험에서 96점을 받자 담임교사가 교무실로 불러 “누구 것을 보고 썼느냐”고 물었을 정도다. 이후 전국 모의고사에서 국어 전국 1등을 하고서야 오해가 풀렸다고 한다.
소형모듈원전(SMR) 기업 테라파워 창업자인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 연합뉴스
소형모듈원전(SMR) 기업 테라파워 창업자인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 연합뉴스
진로만큼은 누구보다 일찍 정했다. 자신의 소프트웨어 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1997년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지만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학업은 순탄치 않았다. 휴학과 아르바이트를 반복하다 결국 졸업장은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컴퓨터를 놓지는 않았다. 친구의 소개로 소프트웨어 전문 교육기관을 거쳐 개발자의 길에 들어섰다.

컴퓨터 회사에 들어갔지만 첫날부터 마주한 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술잔이었다. 당시 회사에는 신입사원이 회식 자리에서 팀원들과 한 명씩 소주를 마시는 전통이 있었고, 고 대표는 입사 첫날 13잔을 연거푸 마시다 결국 쓰러졌다. 대신 개발에는 집요했다. 이동통신 전파 분석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맡은 일에 그치지 않고 ‘회사가 어떻게 하면 더 돈을 벌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렇게 한 회사를 9년 다녔다.

퇴직금 800만원 들고 창업

결국 2012년에서야 다니던 회사를 나왔다. 다른 회사로 옮길 생각은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면 창업한다는 선택지만 있었다. 당시 나이 32세. 수중에는 퇴직금 800만원이 있었고 어머니가 “서울에서 월세라도 얻으라”며 2000만원을 보태줬다.

마음이 맞는 후배 두 명과 서울 논현동 뒷골목에 방을 얻었다. 큰방에는 책상 네 개를 밀어 넣어 사무실로 쓰고 작은 방에서는 잠을 잤다. 월급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려 일을 부탁하고 프로젝트 대금이 들어오면 셋이 나눠 가졌다.

첫 제대로 된 일감은 2000만원짜리 개발 프로젝트였다. 한참 뒤에야 원 발주금액이 2억원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도급과 재하도급을 거치면서 실제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 몫은 10분의 1로 줄어 있었다.

그 돈도 제때 받지 못했다. 잔금을 못 받으면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고 대표는 원도급 회사를 직접 찾아가 사정했다. 그는 “돈을 달라고 찾아가 울고불고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개발자로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법은 알고 있었지만 사장으로서 돈을 버는 법은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제타럭스시스템이 2022년 선보인 디지털트윈 기반 스마트시티 관제시스템. 도시를 3차원 가상공간에 구현해 교통·기상·시설물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다.
제타럭스시스템이 2022년 선보인 디지털트윈 기반 스마트시티 관제시스템. 도시를 3차원 가상공간에 구현해 교통·기상·시설물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다.

15년째 미완성 꿈…끝나지 않은 ‘한국의 구글’

창업 초기 고 대표에게 남은 무기는 직장생활 때 익힌 지리정보시스템(GIS)이었다. 지도 위에 건물과 도로, 수도관, 산림 같은 현실의 정보를 얹어 관리하는 기술이다. 이를 활용해 산림 관리 시스템과 수도시설 관리, 버스 관제 같은 사업을 맡았고, 이후에는 현실 공간을 컴퓨터 안에 그대로 구현하는 디지털트윈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업은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지원 시스템이다. 유해발굴 인력은 해발 600m가 넘는 산악 지형에 노트북과 카메라 등 각종 장비를 짊어지고 올라가야 했다. 제타럭스시스템은 여러 장비의 기능을 태블릿PC 한 대에 담았다. 고 대표는 “우리가 만든 기술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짐을 덜어주고 전사자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데 쓰인다는 점에서 가장 보람이 컸다”고 했다.

제타럭스시스템은 한두 해에 폭발적으로 커진 회사는 아니다. 최근 매출은 약 45억원으로 창업 첫해보다 40배 이상 늘었지만, 한 계단씩 쌓아 올리고 있는 회사다. 개발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재무와 조직 운영은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돈을 잃고 사람에게 당하는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고 대표는 “5년 전쯤부터야 비로소 경영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가장 큰 장점으로 ‘인내’를 꼽는다. 잘 풀리지 않아도 오래 붙잡고 있고 한번 시작한 일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해보는 성격이다. 고 대표는 “15년 동안 한 번도 ‘이제는 회사가 안 망하겠구나’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늘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애플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가 2007년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기조연설에서 아이폰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애플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가 2007년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기조연설에서 아이폰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스티브 잡스 좇던 '컴퓨터 덕후의 35년'

15년간 대표로 살면서 사람을 보는 방식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직원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면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직접 키운 직원이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떠나면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는 조건이 더 좋다면 직원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좋은 리더가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 대표는 “예전에는 좋은 대표가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존경받고, 같이 일했을 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대표가 되고 싶다”고 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기보다 회사와 구성원을 성장시키는 것이 대표의 역할이라는 의미다.

어린 시절부터 읽어온 스티브 잡스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잡스가 직원들에게 냉정하고 혹독했다는 일화를 접할 때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직접 사람을 뽑고 월급을 주고 회사의 생존을 책임져보니 이제는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고 했다.

개발자 출신인 고 대표에게 가장 어려웠던 것도 ‘내가 직접 하는 것’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자신이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가장 빠르고 익숙했지만 회사가 커질수록 대표가 실무에서 빠져나와 사람을 보고 방향을 정해야 했다. 그는 회사를 더 빨리 키우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자신이 오랫동안 개발자의 역할을 놓지 못한 점을 꼽았다.
'차 한 대 값' 컴퓨터 뜯던 소년…30년 넘게 '코딩' 못놓는 이유 [권용훈의 직업불만족(族)]

“한국에도 구글 같은 회사는 있어야죠”

고 대표의 목표는 오히려 더 커졌다. 현재 용역 중심인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자체 공간정보 솔루션을 해외에 판매하는 회사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처음 회사를 나올 때 품었던 꿈도 아직 그대로다. 고 대표는 당시부터 “우리나라에도 구글 같은 회사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내가 한번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 꿈을 접지 않았다.

1991년께 400만원짜리 컴퓨터를 받자마자 뜯어버렸던 중학생은 35년 가까이 한길을 걸었다. 컴퓨터를 뜯고 조립하던 아이는 개발자가 됐고, 개발자는 안정된 직장을 떠나 사장이 됐다.

고 대표가 청년들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은 점도 단순하다. 남들이 정해놓은 속도에 맞추지 말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붙들고 가보라는 것이다. 그는 “꿈은 이루는 속도보다 끝까지 놓지 않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며 “저 역시 아직 꿈을 이루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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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