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개념에서 미술인지 감도 안 오는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展
'내 돈' 글씨만 가득 적힌 작품
지시어만으로 이뤄진 그림 등
140여 작품으로 개념미술 조명
'내 돈' 글씨만 가득 적힌 작품
지시어만으로 이뤄진 그림 등
140여 작품으로 개념미술 조명
“이 푸른 하늘을 보시오. 이 나무들을 응시하시오. 여기 흐르는 강을 보시오.”
텅 빈 캔버스에 글만 몇 줄 적어놓고 작품이라니. 예쁜 그림과 멋진 조각을 기대하며 미술관에 들어섰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수께끼를 풀 때처럼 시간을 들여 작품을 보면 감상이 달라진다. 김범의 작품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지만,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릿속에 풍경이 떠오른다.
‘그림이 없는데도 이미지가 생각나네. 그럼 나는 그림 그 자체를 보는 걸까, 그림을 보고 떠오른 내 생각을 보는 걸까?’
이렇게 인식이 전환되는 경험이 개념미술의 핵심이자 재미다. 그래서 배명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개념미술을 “눈이 아니라 머리를 건드리는 미술”이라고 설명한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는 작가 28명의 작품 140여 점을 통해 한국 개념미술을 집중 조명하는 대규모 기획전이다. 전시는 1970년대 개념미술 작가들의 ‘행위’에서 출발한다.
1975년 이건용 작가는 ‘장소의 논리’에서 전시장 바닥에 분필로 원을 그렸다. 이후 원 밖에 서서 중심을 가리키며 “저기”라고 외쳤다가, 원 안으로 들어가 바닥을 가리키며 “여기”라고 했다.
그렇다면 당시 개념미술 작가들은 왜 이런 기행을 벌였을까. 배 학예연구관은 “같은 시기 우연과 즉흥 위주였던 서구의 개념미술과 달리 한국 작가들은 논리적이고 반복적인 작업을 선호했다”며 “당대 한국의 개념미술 작품은 사회적 모순과 혼란에 맞서기 위해 나름대로 논리와 질서를 세우려 한 흔적으로 읽힌다”고 해석했다. 개념미술은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주재환 작가의 ‘내돈’(1998)은 멀리서 보면 추상화지만, 가까이 가면 실제 은행 통장 위에 ‘내돈’이라는 글자가 색연필로 수천 번 적혀 있다. ‘내돈’은 ‘돈 내’로도 읽힌다. 외환위기 직후 한국인이 겪은 불안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미술관은 개념미술 전문가인 알렉산더 알베로 컬럼비아대 교수를 6개월간 초청해 연구를 쌓았다. 전시는 10월 11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