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강아지는 서울시 공무원입니다 [곽민지의 반려인간 리얼리티]
동네를 지키는 영웅
반려견 순찰대원의 '정년 연장'
반려견 순찰대원의 '정년 연장'
처음 선발 시험에 참가했던 때가 떠오른다. 반려견 순찰대 모집 공지가 올라온 후, 언제나 '내 새끼' 자랑을 하고 싶어 안달 난 보호자들 사이에서 굉장한 이슈가 되었다. 삼삼오오 시험을 보러 가자는 이야기가 SNS를 달궜다. 나 역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당시 배정된 송파구 시험장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시험장에 도착해 보니 화려한 패션과 응원군단을 등에 업은 개 가족들이 나타났다. 주눅이 들었다. 정원이도 예쁜 옷 많은데, 정원이도 친구들이나 가족을 데려올걸... 회사고 카페고 둘이서만 다녔는데, 이곳은 그보다는 수능 시험장에 가까웠다. 부모님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후배들이 응원을 온 듯한 풍경을 지나 조용히 접수대로 향했다.
"아이 이름이 어떻게 될까요?"
"김정원이요."
"반려견 이름이요~"
"김정원이요."
액세서리라도 달고 올 걸 그랬나? '더 예쁜 옷 있는데' 하는 생각이 또다시 들었다. 정원이에게 물을 줬는데 여러 강아지가 있는 환경이 어색했는지 마시지 않았다. 그런 것도 괜스레 민망해졌다.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서 정원이에게 겨우 먹이고 조용히 앉았다. 옆에는 같은 진도믹스 보호자가 앉았는데, 너무 점잖고 귀여워서 보호자끼리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알고 보니 그분도 나와 같이 여성 1인 1견 가구 보호자로, 혼자 심사에 참여했다. 보호자끼리 허공에서 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강아지를 귀여워하던 차에 스태프로부터 심사 시작 안내가 왔다.
4인 4견 1조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동 중에도 강아지들끼리 마찰이 없도록 보호자 옆에 붙어서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몸집이 정원이의 두 배가 되는 귀요미부터, 정원이의 절반 정도 크기의 귀요미까지 다양한 친구들이 한 조로 배정되었다. 이동만 하는 것뿐인데도 그 과정도 심사받는다는 생각이 들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꼬마 병정처럼 어색하게 걸었다.
“강아지들 좌측에 ‘앉아’ 시켜주시고, 보호자분들도 의자에 앉아주세요.”
이것은 확실히 평가 항목이 맞을 것이었다. 나는 내가 먼저 자리에 앉고, 정원이를 왼쪽으로 오게 해 '앉아' 하고 말했다. 다행히 정원이는 조용히 앉았다. 그러나 강아지가 많은 공간에서 후각과 청각이 예민한 강아지들에게 집중하기 쉬운 환경은 아니었던지라, 어떤 귀요미들에게는 앉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아니 얘가 이런 애가 아닌데 왜 이래... 앉아! 앉아! 평소엔 잘하는데 왜 이러지...”
밖에서 만났다면 말이라도 건넸을 텐데. '사교성이 좋으니까 그렇죠, 너 친구들 좋아하는구나? 저희 애는 다른 강아지한테 관심이 없어서 운동장에 가도 제가 뛰어야 뛰어요.(진짜다.) 다른 강아지들에게 관심 많은 아이들 부러워요...' 같은 소릴 했을 텐데, 아이를 좌측에 먼저 앉히는 데 성공한 보호자가 되고 나니 그런 일상적인 말도 얄미울 것 같아 그만두었다.
이렇게 강아지가 많은데 인사도 못 하게 하고, 마냥 왼쪽에 앉으라고만 하는 보호자와 상황을 이해할 리 없는 귀요미는 한참을 서성였다. 귀엽다... 너무 귀엽다. 허락을 구하고 핸드폰으로 찍고 싶다... 별의별 생각을 다 하던 차에 마침내 귀요미가 착석하고, 감독관은 가지고 있던 건강검진 기록지처럼 생긴 채점표에 뭔가를 체크했다.
다음은 리드줄을 잡고 이동해 '기다려' 테스트를 했다. 김정원이 할 줄 아는 것은 기다려 밖에 없다. 운동장에 데려가도 혼자서 뛰지 않고 내 옆에만 있으려 하기 때문에, '기다려'를 시켜서 저 멀리 왔을 때 '이리 와!'라도 해야 그나마 뛰게 할 수 있었으므로. 반려견 운동장에서 본전을 뽑으려고 시도했던 연습 덕분에 기다려 테스트도 성공. 그 뒤에는 다른 개를 마주했을 때의 반응을 보는 '대견 반응 시험', '대인 반응 시험'이 있었다. 감독관이 마주 본 상태에서 내 어깨를 툭 치거나, 맞은편에 강아지가 지나가도 공격적으로 반응하지 않는지를 보는 테스트였다. 김정원은 두 순간 모두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시금 깨달았다. 너 이 녀석, 언니가 어떤 위험에 처해도 구해줄 마음이 조금도 없구나...
다음으로는 자연스럽게 산책하듯 20미터를 걸어보는 시험이었다. 자연스럽게 걸어보라니, 세상 최고로 부자연스러운 워킹을 부르는 주문이었다. 심정적으로는 왼 오른 왼 왼 오른 리듬으로 걷는 기분이었다. 어떻게든 워킹을 끝내고 나서 간단한 반려견 관련 법규 테스트를 구두로 거치고 나서 시험이 마무리됐다.
500여 마리 강아지가 참석한 발대식은 짖는 소리 하나 없이 조용했다. 우리는 반려견 순찰대의 덕목, 요약하자면 "동네를 지금처럼 열심히 누비면서 산책에 힘쓸 것"을 안내받고 몇 가지 순찰 시뮬레이션을 했다. 취객이 누워있으면 (보호자가) 신고하기, 깨진 가로등을 발견하면 (보호자가) 신고하기, 위험한 상황을 목격하면 (보호자가) 신고하기. 감투는 김정원이 쓰고 일은 다 내가 하는 시스템이지만,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좁은 길 구석구석으로 인도하는 것은 김정원만이 하는 일이므로 불평할 순 없었다. 반드시 반려견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할 것, 그러나 위풍당당하게 조끼를 입고 동네의 보안관이 될 것. 반려견 순찰대의 최대 미션은 거기 있었다.
사회에서 하는 어떤 역할이 눈에 보여야만 차별의 영역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보호자의 속상함과 뿌듯함은 아랑곳없이, 아무 생각 없이 동네를 누비는 김정원은 의도치 않게 많은 일을 해냈다. 실제로 어떤 아저씨는 김정원의 형광조끼를 발견하고 피우던 담배를 끄기도 하고, 깨진 보도블록이나 장애인 유도 도로에 적치된 공유 자전거를 (내가) 신고해 지역 사회에 기여하기도 했다.
6월, 3년이 지나 응시한 재시험에서도 합격 통보를 받았다. 무급 종신직이지만 서울시 이름을 달고 활동하는 김정원 대원의 정년이 연장된 셈이었다. 앞으로도 김정원 대원의 눈부신 활약과, 그 활약을 뒷받침할 나의 무급 노동을 응원하며. 전국의 반려견 순찰대원 여러분, 파이팅.
*이 글에서 언급된 반려견 순찰대 시험과 발대식은 3년 전 시행된 것을 기준으로 하였으며, 올해 신규 반려견 순찰대의 운영 방식과는 차이가 있음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