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어쩌다 마주친 반도체 복권 파티
반도체가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예상치 못한 반도체 가격 급등과 수출액 증가로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국가 및 가계부채 비율, 정부 세입 증가율, 경상수지 흑자액 등 거의 모든 거시경제 지표가 춤을 추고 있다. 이들 지표는 마치 우리 경제가 거대한 도약을 이뤄낸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사회 곳곳에서 호황 파티로 들썩일 준비를 하고 있다. 늘어난 세수는 기계적으로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불릴 것이다. 늘어난 재정 덕에 증액될 농어촌 기본소득은 자치단체장과 주민을 기쁘게 하겠지만, 이미 여유로운 지방교육청의 예금 잔액은 쓰일 곳을 찾지 못해 더 무거워질 뿐이다.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파티 소식도 들려온다. 지금까지의 파티가 이미 발생한 반도체 수익의 사후 배분을 두고 벌이는 잔치였다면, 이제는 미래에 생길지 모를 수익을 담보로 한 선제 파티다. 바로 ‘새로운 반도체 팹의 특정 지방 유치’다. 이 이슈는 가뜩이나 복잡한 반도체 이익 논란을 더 뒤엉키게 만들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초일류 반도체를 생산하는 팹은 당연히 세계 최고 입지에 자리 잡아야 한다. 세계 최고 인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 수 있어야 하고, 단 1초의 정전도 허용하지 않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필수다. 전반적인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의 완비는 물론, 다양한 핵심 협력업체가 한곳에 모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집적도 역시 요구된다.

글로벌 반도체 투자 결정은 수십 가지 변수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고난도 방정식이다. 우선 예측 불가능한 인공지능(AI) 기술의 미래 흐름에 선제 대비하면서도, 턱 밑까지 치고 올라온 창신메모리(CXMT) 양쯔메모리(YMTC) 등 중국 업체와의 격차도 더 벌려야 한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같은 핵심 자산을 제때 확보할 수 있을지 모니터링하고 물리적 한계에 부딪힌 1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 시대를 대비해 양자역학 기반의 소자·공정 연구도 서둘러야 한다. 메모리에 쏠린 사업 구조를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로 확장하는 숙제도 남아 있다.

이처럼 난해한 방정식 속에서 입지를 선정하고 투자 규모를 결정하는 것은 최종 책임을 지는 ‘기업’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반도체 투자는 수년에서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는 초장기 프로젝트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번 입지 선정 과정에 정부가 상당 부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5년 단임제 정부가 반도체 미래가 걸린 장기 투자를 단 몇 개월 만에 좌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지금 대한민국 반도체의 핵심 가치는 ‘지속 가능성’이다. 우리 모두는 이번 호황이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본질적 체질 개선의 결과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이 호황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도, 통상적 수준을 뛰어넘은 이번 수익이 어쩌다 당첨된 복권 같은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다. 초호황 사이클 뒤에는 언젠가 가혹한 불황의 겨울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지금은 이 우연한 기회를 ‘지속 가능한 반도체 생태계’를 설계하고 확장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이를 저해하는 단 한 치의 오차도, 정치적 비효율도, 일시적 자만도 용납될 수 없다. 20개가 넘던 글로벌 메모리 기업 중 오늘날 단 3개만 살아남았다는 가혹한 생사의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입지 판단은 정부가 내리고 최종 책임은 기업이 지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화하지 않는지 온 국민이 감시해야 한다. 다른 경쟁국이 자국 반도체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이때, 우리 정부 역시 진정으로 기업의 발판이 돼주고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 두 눈을 부릅뜨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