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남쪽의 티모르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동티모르 기업은 상표나 특허를 등록하기 위해 특허청에 갈 수 없다. 국가 공인 지식재산권(IP) 심사 시스템이 없어서다. 권리자가 현지 일간지에 ‘경고 공고’를 내는 방식으로 소유권을 알리는 게 다다. 외국 기업이 특허를 보호하려고 특허청 출원서 대신 신문 지면부터 확보해야 하는 일이 반복된 배경이다.

이런 동티모르에 한국이 특허청을 세워주려고 하고 있다. 동티모르 정부의 지원 요청이 있었다. 이에 따라 지식재산처 산하 한국발명진흥회는 지난달 지난달 ‘동티모르 국가 지식재산기관 설립 및 역량 개발 사업’ 용역을 발주했다. 동티모르 특허청이 문을 열 때 사용할 첫 업무 매뉴얼을 한국이 설계하는 사업이다. 특허·상표·지리적표시(GI) 출원 접수부터 심사 기준, 등록·공고 절차, 적정 심사관 수, 권리별 수수료 체계까지 2년 치 기관 운영계획이 포함됐다. 지난해 지식재산처가 동티모르 통상산업부의 ‘특허청 설립 준비팀’을 한국으로 초청해 행정 노하우를 전수한 데 이은 후속 조치다.

이번 사업은 한국이 해외 지식재산기관 개청을 돕는 첫 번째 사례다. 그동안 한국의 해외 IP 협력사업은 아랍에미리트(UAE)와 파라과이 등 이미 지식재산 행정 체계를 갖춘 국가의 전산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고도화하는 방식이 많았다. 반면 동티모르 사업은 접수창구와 심사 절차, 인력 운영, 민원 대응 체계 등 기관의 기본 골격부터 만든다.

동티모르가 IP 인프라 구축을 서두르는 현실적인 이유는 아세안(ASEAN) 편입이다. 아세안 11번째 정식 회원국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외국인직접투자(FDI)를 늘려야 하는데, 제품명과 기술을 보호받지 못하는 시장에는 기업이 진입을 꺼릴 수밖에 없다.

한국으로서도 단순 공적개발원조(ODA)를 넘어선 실익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흥국에 한국식 IP 행정 시스템을 이식하면 장기적으로 우리 기업의 해외 시장 방어망이 넓어지는 효과가 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