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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마이크론에 무조건 넘겨라"…정부 으름장에도 SK하닉 지켜낸 사람들
정부 주도 하이닉스 매각 추진해 마이크론과 MOU까지 체결
반대한 은행들에 찬성 강요, 미온적이면 행장 교체 등으로 보복
"정부 주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 호남 클러스터 추진에 많은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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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 호남 클러스터 추진에 많은 시사점"
정부 주도로 하이닉스 美 마이크론에 넘기는 방안 추진
26일 한국경제신문이 2002년 당시 SK하이닉스 매각에 관여했던 은행 및 회사 담당자들과 인터뷰를 한 결과, SK하이닉스는 경쟁사인 미국 마이크론에 매각 직전 단계까지 간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매각에 깊숙이 관여했던 전직 은행 임원 A씨는 "당시 정부는 하이닉스 같은 부실한 기업이 우리 금융시장에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매갹해야 한다는 방침을 채권단에게 공유했다"며 "섬유, 철강, 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과의 통상 마찰을 줄이는 데 하이닉스 매각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당시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의 책임을 대기업그룹에 물었고 삼성자동차는 대우차에, 대우전자는 삼성전자에 넘기고, LG반도체는 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에 넘기는 등 빅딜을 추진했다. 하이닉스의 경우 2000년 초 현대그룹 '왕자의 난'이후 자금조달의 어려움이 컸고 그해 하반기부터 D램 가격 급락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자, 정부는 마이크론 매각을 추진했다. 하이닉스 회생을 책임질 하이닉스반도체 구조조정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는 신국환 전 산업자원부 장관을 선정했고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현 하나은행), 한빛은행(현 우리은행), 씨티은행 서울지점, 한국투자신탁운용 등 관계자와 박종섭 하이닉스 사장 등이 위원으로 위촉됐다. 특별위 출신 B씨는 "당시 14달러 하던 128M D램 가격이 2달러대로 떨어졌고, 반도체업계간 치킨게임이 벌어졌다"며 "마이크론은 당시 시장의 불황 원인을 공급 과잉으로 보고 하이닉스를 인수해서 셧다운시키려고 했다"고 회상했다. A씨도 "정부는 하이닉스를 매각하는 것이 한국의 대외 신인도 향상에 도움이 되고 한미 무역마찰 해소에도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2001년 10월 외환은행 한빛은행 등으로 구성된 채권단은 위기를 겪던 하이닉스에 3조원의 출자전환을 결의하면서 동시에 6000억원의 신규 자금 지원과 채무 탕감 1조4000억원을 결의해 SK하이닉스의 대주주가 됐다. 2002년 12월 채권단은 1조 9000억원의 출자전환을 추가로 단행해 총 7조원을 지원했다.
정부가 은행을 압박하면서 하이닉스 매각은 급속도로 진행됐다. 먼저 스티븐 애플턴 마이크론 회장과 W.G.스토브 주니어 최고재무책임자(CFO)는 2001년 11월 하순 극비 방한해 신국환 위원장 및 금융감독위원장을 만나 하이닉스 인수를 논의했다. 11월 22일 서울 광화문 골드만삭스가 있는 빌딩 23층에선 마이크론 사장과 CFO가 당시 외환은행의 드로스트 부행장과 이연수 부행장, 박종섭 하이닉스 사장 등과 만나 인수 계획을 설명했다. 그해 12월 3일 박종섭 사장은 마이크론과 합병 추진을 발표했다.
금융당국, 채권단회의 정회시키며 매각 반대파에 압박 전화
매각 협상에선 여러 난관에 부딪혔다. 이듬해인 2002년 1월 23일 박종섭 하이닉스 사장과 당시 이덕훈 한빛은행장, 외환은행의 드로스트 부행장과 이연수 외환은행 부행장 등 10여명의 협상단은 미국을 방문해 마이크론과 매각 협상을 시작했다. A씨는 "마이크론은 처음엔 하이닉스를 14억달러에 사겠다고 제안했지만, 채권단은 거절했고 이후 40억달러 매각에 합의했다"며 "38억달러는 메모리 부분 매각자금으로 채권단에게 주고, 2억달러로 비메모리 분야에 투자하기로 합의했으나 여러가지 까다로운 조건들이 붙었다"고 말했다. 마이크론측은 먼저 인수자금을 현금이 아닌 마이크론 주식으로 주겠다고 하고 1년간 락업 기한(매매 제한)을 두기로 제안했다. 또 채권단에 인수자금 15억달러를 고정금리로 대출해달라고 요구했다. 채권단은 변동금리 적용 및 담보조로 마이크론 본사 보증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마이크론측은 하이닉스 특허 분쟁시 손실 분담도 한국 은행권이 떠 안아야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채권단 측은 빈손으로 귀국해야 했다.채권단은 3월에 다시 방문해 협상했으나 타결되지 못했다. B씨는 "당시 금융감독원에서 자주 은행들에 전화해 조속히 팔라고 종용했다"고 말했다. 당시 경제부총리는 진념(이후 전윤철), 금융감독위원장은 이근영, 청와대 비서관은 권오규 등이었으며 관련 국장 중엔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과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국장도 포함돼 있었다. 협상단 자문은 법무법인 율촌이 맡았고 하이닉스 실사는 딜로이트안진이 담당했다. 당시 하이닉스 주채권은행은 외환은행이었으나 매각에 소극적으로 나서자 정부는 '말을 잘 듣는' 한빛은행을 내세워 협상이 잘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결국 협상단은 영어에 능통한 이덕훈 한빛은행장을 단장으로 내세워 재차 미국을 방문했고 4월 19일 '채권단 동의'와 '이사회 동의'를 조건으로 논바인딩 계약을 체결하고 돌아왔다.
채권단 동의 절차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4월 29일 채권단회의에선 75%이상 가결 요건을 맞추지 못해 결의가 지연됐다. B씨는 "은행들은 대부분 마이크론에 손해를 보며 매각하는 현 조건에 반대했지만 금융당국 눈치를 보느라 반대하지 못했다"며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도 경영개선권고를 받은 상태여서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찬성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입김이 미치지 못하는 2금융권이 채권단에 많아 75% 동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100여개 하이닉스 채권단 중 유동화 등을 담당한 2금융권이 대부분 반대했기 때문이다. B씨는 "결국 금감원은 채권단 부결이 예상되자 갑자기 회의를 정회시켰다"며 "금감원은 하이닉스 매각에 반대한 금융기관을 찾아 일일이 전화해서 '매각에 협조하라'며 압박했다"고 말했다. 이후 채권단 회의는 속개됐고 80% 이상 동의로 채권단 동의는 통과됐다. 참여연대는 당시 정부가 채권단을 종용해 마이크론에 무리하게 매각하도록 압박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채권단 협상팀이 정부 측 인사로부터 '무조건 끝내라'는 종용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정부 관계자들은 "하이닉스에 신규 지원은 없고 해외 매각 무산 시 법정관리로 갈 수밖에 없다"는 압박해 이 사실이 기사로도 공개됐다.
하이닉스 살린 10명의 이사진과 은행에 불어닥친 매각 불발 후폭풍
4월 30일 오후 2시 서울 영동의 하이닉스반도체 사옥에서 열린 이사회에선 대이변이 일어났다. 협상단의 일원으로 미국에서 하이닉스 매각 계약에 참여했던 박종섭 사장을 포함해 하이닉스 이사진 전원이 매각에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이닉스는 당시 "이사회에서 사내이사 3명, 사외이사 7명 전원이 반대함에 따라 '매각 안건'이 부결됐다. 이에 따라 조건부로 마이크론과 체결했던 양해각서(MOU)의 효력도 자동 소멸됐다"고 공시했다. 당시 하이닉스 이사회 멤버는 사내이사 3명(박종섭 대표이사 사장,박상호 사장,전인백 부사장)과 사외이사 7명(이용성 전 은행감독원장, 우의제 전 외환은행장 직무대행, 강철희 고려대 교수, 전용욱 중앙대 교수, 우창록 법무법인 율촌 대표, 손영권 오크테크놀로지 사장, 제임스 구지 인텔 이사) 등 10명이었다. 당시 정부와 채권단이 '우호적'으로 분류한 사람은 금융계 출신인 이용성 전 은감원장,우의제전 외환은행장 직무대행 등 2명이었고 나머지 사외이사 5명은 '중립'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이날 이사진은 정부와 채권단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갖고 전원 부결에 동참했다. 5월 초순 마이크론도 하이닉스 인수 포기를 선언했다.후폭풍도 거셌다. 외환은행은 임기 2년도 안 된 김경림 행장이 갑자기 4월 초 물러났다. 현대그룹 계열사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던 이연수 부행장도 갑자기 사임했다. A씨는 "마이크론 매각에 소극적이었던 외환은행에 대한 청와대의 불만이 인사 압박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SK하이닉스의 과도한 성과급 논란이 나오는 것은 보상의 공정성과 적정성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오늘날 성공 배경엔 현 임직원뿐만 아니라 전 임직원의 일치단결된 회생 의지와 연구개발 노력이 어울러진 결과일뿐만 아니라 채권단 등 많은 사람의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하이닉스 매각 추진이 예상치 못한 이사진의 제동으로 무산된 사례는 최근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호남에 건설하는 것을 추진중인 것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2년 정부의 하이닉스 매각 추진에 반대했던 한 금융권 인사는 "공장 부지 건설은 회사가 경제성을 따져서 정하면 되고 정부는 도와주는 식이어야 하는데, 정부가 먼저 정하는 방식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며 "과거 하이닉스 이사회가 정부의 매각 추진을 반대한 것을 참고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이사회에서도 신중하게 결정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 하이닉스 대신 대우조선 살 뻔
SK그룹이 2011년 하이닉스 대신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인수도 추진할 뻔했던 것으로 나타났다.재계에 따르면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지시에 따라 내수 산업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고자 수출이 가능한 글로벌 제조업 매물을 검토했다. 이때 첫 번째 물망에 올랐던 매물은 대우조선해양이었다. 하지만 이때 투자은행(IB) 업계의 조언을 받아 인수 타깃을 하이닉스로 바꿨다. SK그룹의 SK하이닉스 인수자문은 맥쿼리증권과 BoA메릴린치가 공동 인수자문을 맡았다. 당시 인수팀에선 안성은 메릴린치 대표와 조찬희 부장, 이현 맥쿼리증권 상무가 맹활약했다. 이들은 각각 현재 스톤피크 한국 총괄 회장(안성은), BoA메릴린치 한국 IB 대표(조찬희), BDA파트너스 한국법인 대표(이현)로 재직 중이다. 인수 타깃을 하이닉스로 정하는 과정에선 이현 대표가, 선정 후 SK그룹의 인수 과정에선 안 회장과 조 대표의 기여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 회장은 채권단 측과 10여년간 하이닉스 경쟁력 개선 작업에 참여했고 SK그룹과는 소버린 경영권 분쟁 사태때부터 인연을 맺어 딜을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은 당시 반도체 업황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자 영국계 반도체 독립 리서치업체 호라이즌캐피탈과 별도로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