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시선] 절대악의 종착지 혹은 입구, 선관위
1년여전 이미 작금의 사태 경고
늘 그렇게 반복되는 역사의 비극
명백히 파괴당한 국민의 참정권
모든 수단 동원해 진상 규명해야
'무소불위의 괴물' 선관위 만든
국회·헌재·대법원도 책임 느껴야
이응준 시인·소설가
늘 그렇게 반복되는 역사의 비극
명백히 파괴당한 국민의 참정권
모든 수단 동원해 진상 규명해야
'무소불위의 괴물' 선관위 만든
국회·헌재·대법원도 책임 느껴야
이응준 시인·소설가
이 ‘선관위 게이트’에는 다른 뇌관들이 더 남아 있을 거다. 악과 그 악을 비호하는 것들은 ‘어리석음’을 공유하니까. 역사의 비극은 늘 그렇게 반복된다. 여하간 이제는 대한민국 선거에 대한 ‘부실’선거론자와 ‘부정’선거론자가 서로 부딪칠 이유가 없어졌다. 부실이 극도로 쌓이면, 의도성을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결과적 상태’로는, 부정(不正)이 된다. 양쪽 공히 ‘선관위 수사’라는 공동의 목표와 그 명분이 생긴 것이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부실선거 수사이면서도 부정선거에 대한 수사가 된다.
예컨대, 한 사람이 고층빌딩에서 미심쩍게 떨어져 죽었다. 이게 극단적 선택인지, 누가 밀어서 죽였거나 죽이고 나서 떨어뜨린 것인지 등을 수사하는 것은 그의 ‘죽음’ 앞에서 당연하다. 수사하지 말자는 게 수상한 짓이다. 고로, 자유민주공화국의 주권자 국민의 참정권이 명백히 파괴당하고 더럽혀졌으니 이 팩트(자유민주주의 선거의 죽음)를 모든 측면에서 철저히 수사하자는 데 반대한다면, 그는 스스로 범인이거나 이 범죄를 알든 모르든 그 범인을 도와주는 꼴이 된다.
특검 같은 거 시작도 안 했건만 이 순간에도 선관위의 죄상들은 언론들을 통해 다양하게 쏟아져나오고 있다. 음모론 소지가 있는 사안들과 ‘부정’이라는 표현을 애써 배제했는데도 이렇다. 투표지 부족, 위법투표 용지, 위법투표 상황, 투표지 배정 위법, 개표 위법, 개표 전산입력 오류, 선거인명부 대거 누락, 투표지 유실, 득표수 누락, 득표수 뒤바뀜, 투표지분류기 장애, 공직선거법 위반, 증거인멸 혐의 ‘등등’이 ‘전국적으로’ 끔찍한 수준이다. 이는 베네수엘라에서 자행된 부정선거에 상당 부분 속하는 행태들로서, 한국에도 마두로가 있고 없고는 그다음 문제다. 선관위, 그 곰팡이 썩은 비닐장판을 걷어내면 우글거리는 해충 소굴만이 아니라, 어디로 이어진 이상한 동굴 입구가 나올지도 모르지만.
악이 나태해지면 그 나태함으로 인해 안 나태할 때보다는 선해지는 게 아니라, 그 나태함으로 더 더러워지다가 악이 발각되는 법이다. 선관위는 공무원 조직 가운데 가장 정직하고 성실해야 한다는 상식이 오늘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선 ‘제대로 된’ 특검 수사를 비롯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철저히 털어내고 심판한 뒤 선관위 자체마저 해체시켜야 한다. 그 과정과 결과에서 부실선거를 넘어선 ‘부정선거의 유무’도 밝혀져, 자유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참정권 실현에 관한 국론분열이 소멸돼야 한다. 다만, 선관위를 없애는 핑계로 개헌한다며 온갖 개악(改惡)을 저지를까 봐 너무 무섭다. 개헌 없이도 검찰을 사실상 없애버린 정치권이 선관위도 ‘우선은’ 그렇게 없애지 않는다면, 정치권은 선관위와 공범이다.
솔직히 나는 선관위 심판의 실현을 비관한다. 선관위를 무소불위의 괴물로 만든 ‘선관위 카르텔’에는, 복면경찰에게 질질 끌려나오는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주민에게 “억울하면 소송해”라고 했던 비리 ‘가족회사’ 선관위 직원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선관위를 감사(監査)할 수 없도록 못 박은 게 국회의원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다. 또한 선관위는 선관위원장을 맡는 대법관, 일반법원 판사와 한통속이다. 법원이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안에 있는 투표지를 증거보전 했더라면, 시위대로 내몰린 청년이 서울경찰청장으로부터 “패가망신”시키겠다는 소릴 듣는 일은 없었을 거다.
그런 판사들이 문제없다고 판결 내린 수많은 선거부실(부정) 관련 소송에 배신당한 사람들이, 올림픽공원으로 모여드는 저 국민들이다. 지금 그들은 1960년의 4월과 1987년의 6월을 동시에 온몸으로 견뎌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