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연못 속 고래' 국민연금…'거대 기금의 저주' 풀 해법은?
이준행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
단일 기관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운용하다 보니, 주식과 채권을 사고파는 모든 움직임이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주게 된다. 이 때문에 자산 비중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향후 기금 소진 시기에 대규모 자산을 한꺼번에 유동화해야 할 경우 자본시장에 가해질 충격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현재의 한도 초과 유예와 같은 미봉책으로는 이른바 ‘거대 기금의 저주’를 풀 수 없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기금을 독립된 여러 조직으로 분할하고, 수익률의 95% 이상을 결정하는 전략적 자산배분(SAA) 권한을 각 기금에 이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체 기금을 300조원 규모의 5개 기관으로 나눠 독립적으로 운용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기금운용위원회는 자산 배분 결정에서 손을 떼고 캐나다(CPPIB)나 싱가포르(GIC)처럼 장기 투자 지침인 ‘기준 포트폴리오(Reference Portfolio·RP)’를 설정해 성과를 공정하게 감독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일각에서는 ‘나누어 평균하면 결과는 같지 않느냐’고 반문하지만, 이는 기금 분할이 가져올 ‘경쟁 효과’와 ‘리스크 분산’의 가치를 간과한 것이다. 기금 분할은 세 가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첫째, SAA 경쟁을 통한 수익률 제고다. 분할된 조직은 RP 대비 초과 성과를 내기 위해 각자 창의적이고 다양한 자산 배분 모델과 전략을 활용하게 된다. 이는 현재의 획일적인 5대 자산군 분류에서 벗어나 해외 선진 연기금처럼 탄력적인 운용을 가능하게 한다.
둘째, 전략적 리스크 분산이다. 각 조직이 서로 다른 시장 전망에 따라 자산 배분을 수행하기 때문에 단일 기관의 판단 오류가 전체 국민연금 기금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위험을 원천적으로 줄일 수 있다. 셋째, 시장 충격 완화와 운용의 유연성이다. 매매 타이밍이 분산되면서 고래의 몸짓 하나에 시장이 요동치는 현상을 방지하고, 자산운용의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 분할된 조직을 전국 각지에 배치함으로써 지방 균형 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에도 기여할 수 있다.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은 단순히 보험료를 더 걷는 것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축적된 기금을 얼마나 효율적이고 똑똑하게 운용하느냐가 미래 세대의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핵심이다. ‘연못 속의 고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금 분할은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건강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가장 담대한 선택이 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기금운용 체계의 구조적 전환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