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하경 한국경제신문 기자
그래픽=김하경 한국경제신문 기자
지난 5월의 끝자락, 강원도 강릉에서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올해 첫 열대야가 5월 30일 밤에 관측됐는데, 이는 작년보다 19일이나 빠른 기록입니다. 이미 봄부터 전조가 있었습니다. 지난 3월 전국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섭씨 1.3℃ 높아 9년 연속 이상고온이 이어졌고, 바다의 해수면 온도는 작년보다 1.4℃ 올랐어요.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닙니다. 이는 전 세계적 현상입니다. 바로 ‘슈퍼 엘니뇨’가 엄습한 영향이죠. 엘니뇨는 적도 부근 태평양 중동부의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지구의 대기순환에 교란이 생기는 현상입니다. 정상 상태에선 무역풍이 따뜻한 바닷물을 서쪽으로 밀어내며 균형이 이뤄지는데, 이게 깨지면서 뜨거운 바닷물이 동태평양으로 확산되고 전 세계적 기상이변을 촉발합니다. 슈퍼 엘니뇨는 해수면의 온도 편차가 평년보다 2℃ 이상 높은 극단적인 경우를 말합니다. 1950년 이후 단 다섯 차례만 발생했을 정도로 이례적이어서 세계 과학계가 긴장하고 있습니다.

엘니뇨가 슈퍼급으로 발달할 경우 올해와 내년은 기후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옵니다. 미국 기후과학자 지크 하우스파더는 올해가 ‘역대 최고기온의 해’가 될 가능성을 19%, 두 번째로 더운 해가 될 가능성은 50%로 추산했습니다. 문제는 엘니뇨가 단독으로 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북극 해빙 감소 등 여러 기후변화 요인이 엘니뇨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기상이변의 강도를 키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상이변은 단순한 자연현상에 그치지 않고 지구촌 경제 전반에 거대한 파급효과를 몰고 옵니다. 미국·이란 전쟁 등으로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되는 데다 고환율·고금리·고물가의 ‘3고(高) 위협’이 지속되는 가운데, 슈퍼 엘니뇨발 식량·에너지 위기는 경제에 또 다른 메가톤급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어떻게 글로벌 경제 리스크로 이어지는지 3면에서 자세히 풀어보겠습니다.

서울의 커피 값까지 좌우하는 '기후 메가쇼크'
물가·금리·일자리 등 경제 전방위로 도미노 타격

 로이터 연합뉴스
로이터 연합뉴스
2023년 남미 브라질의 커피 농장이 타들어갔습니다. 엘니뇨가 촉발한 가뭄 때문이었죠. 그해 국제 커피 선물 가격은 30% 가까이 치솟았고, 여파는 서울의 카페 메뉴판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마존의 이상기후가 서울 시민이 마시는 아메리카노 한 잔 값을 끌어올린 겁니다. 기상이변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밥상 물가부터 전기요금, 주식 가격, 그리고 일자리에까지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기후경제학이 작동하는 네 가지 경로

파급 경로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뉩니다. 가장 광범위한 경로는 농업과 식량 분야입니다. 가뭄과 홍수는 곡물 생산량을 급감시켜 식품 가격 급등, 즉 ‘애그리플레이션(Agriflation)’을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브라질 가뭄으로 대두 가격이 오르면 가축 사료비가 뛰고, 이는 결국 축산물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의 밥상 물가를 위협합니다.

두 번째는 에너지와 인프라 경로입니다. 가뭄은 수력발전 능력을 떨어뜨리는 반면, 폭염은 냉방 수요를 폭증시켜 전력망의 안정성을 흔듭니다. 나아가 파나마 운하처럼 수위에 민감한 핵심 물류 인프라가 제 기능을 못 하면 해운 병목현상이 발생해 전 세계 교역·물류 비용이 치솟게 됩니다.

세 번째 경로는 글로벌 공급망입니다. 동남아시아 가뭄이 현지 전력난을 유발하면 그 지역에 진출한 반도체 패키징 공장들이 가동을 멈춥니다. 이런 균열은 결국 한국, 일본, 미국의 첨단 전자제품 생산 차질이라는 도미노 충격으로 이어집니다. 마지막으로 거시경제와 금융 경로입니다. 기상이변이 유발한 물가상승은 중앙은행의 금리인상 압박으로 이어지고, 재난 복구에 투입되는 재정 지출은 정부의 미래 투자 여력을 소진시킵니다. 금융시장도 예외는 아닙니다. 화석연료 시설이나 해안 저지대 부동산처럼 기후변화로 가치가 급락하는 ‘좌초자산(Stranded Assets)’ 문제는 금융시스템을 흔드는 잠재적 뇌관이 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역사상 가장 큰 시장실패”

역사는 기후 충격의 실상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가장 참혹한 사례는 1877~1878년 엘니뇨 발생 때였습니다. 인도, 중국, 브라질에 극심한 가뭄과 대기근이 동시에 덮치면서 50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는 당시 지구 인구의 3~4%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1997~1998년 발생한 엘니뇨는 또 다른 교훈을 남겼습니다. 인도네시아 경제학자들은 아시아 금융위기로 자국 경제가 순식간에 붕괴된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엘니뇨를 지목했습니다. 극심한 가뭄이 농업과 수력발전, 생활용수 인프라를 동시에 무너뜨려 경제 체력을 고갈시킨 상황에서 외환위기라는 카운터펀치를 맞았다는 분석입니다. 당시 엘니뇨가 전 세계 경제에 안긴 손실은 약 5조7000억 달러(현 환율로 약 8820조원, 세계 국내총생산 총합 기준)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경제학계를 깨웠습니다. 2006년 영국 경제학자 니컬러스 스턴은 기후변화를 “역사상 가장 크고 광범위한 시장실패”로 규정했습니다. 그는 지금 당장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전 세계 총생산의 5~20%가 영구적으로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201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윌리엄 노드하우스 미 예일대 교수는 기후변화와 경제성장의 상호작용을 정량화해 탄소 배출의 사회적 비용을 수치로 산출해냈습니다. 이는 오늘날 ‘탄소세’ 도입의 이론적 근거가 됐습니다.

단기·중장기 아우르는 대응책 시급

이 모든 이상 현상의 뿌리는 무엇일까요? 온실가스가 답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쉼 없이 뿜어낸 온실가스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였습니다. 그 결과 지구가 우주로 내보내야 할 열을 붙잡아두고, 그 열이 바다를 데웠습니다. 데워진 바다가 더 많은 수분을 대기로 증발시켜 폭풍을 강화하고, 가뭄과 폭우라는 극단적 양상을 몰고 옵니다.

해법은 국가 경쟁력을 지키면서 기후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투트랙(Two-track)’ 전략이어야 합니다. 단기적으로는 인공지능(AI) 기반의 기상 조기경보 시스템을 고도화해 산업 피해를 최소화하고, 공급망 전반의 기후 회복력을 높여야 합니다. 폭염 취약계층을 위한 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중장기적으로는 탄소 감축이 관건입니다. 이 과정에서 일방적인 탄소세 도입이나 과도한 배출권 규제보다 자발적 감축을 유도하는 세제 혜택과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시장 친화적 방안이 고려돼야 합니다.

NIE 포인트

1. 기후변화가 경제에 영향 미치는 또다른 경로가 있을까?

2. 기후변화는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시장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3. 글로벌 온실가스 규제와 협약이 어떤 수준인지 확인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