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서 고액 연봉 CEO를 둔 기업에 대한 추가 과세 확대안이 주민투표에서 부결됐다. 기업 유치와 경기 회복을 우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재정 확충 필요성보다 더 큰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주민발의안인 ‘프로포지션 D’는 개표 결과 47%에 못 미치는 찬성률에 그치며 부결됐다. 반대는 53%를 기록했다. 해당 안건은 최고경영자 보수가 지역 직원 중간임금의 100배를 넘는 기업에 부과하는 기존 추가세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번 결과는 기업과 고소득층 증세에 반대해온 샌프란시스코의 중도 성향 민주당 지도부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자선사업가 출신이자 의류업체 리바이스 창업가 가문의 후손인 다니엘 루리 시장에게는 정치적 승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루리 시장은 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추가 과세가 기업 이전을 부추길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유지해왔다.

캘리포니아의 정치 컨설턴트 짐 로스는 루리 시장의 높은 지지율이 증세안 통과를 어렵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시장이 강하게 반대하는 세금 인상안을 유권자들에게 설득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외부 단체들이 반대 캠페인에 수백만 달러를 투입한 점도 부결의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실제로 증세 반대 진영에는 580만달러 이상이 투입됐다. 벤처투자자 마이클 모리츠와 구글 공동창업자 Sergey Brin 등도 여섯 자릿수 규모의 기부금을 냈다. 샌프란시스코 선거자금 공개 자료에 따르면 대규모 자금 지원이 반대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노동조합은 시의 재정난 해소를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시 당국은 지난해 말 각 부서에 수억달러 규모의 예산 삭감을 준비하라고 통보했다. 당시 예상 재정적자는 9억3천600만달러에 달했다. 노조 측은 확대된 CEO 세금이 공공서비스 축소를 막는 재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해당 세금은 CEO와 지역 직원 중간임금 간 격차와 기업 유형에 따라 지역 매출의 0.02~0.12%, 또는 급여 총액의 0.08~0.48%를 부과한다. 그러나 프로포지션 D는 중간임금 산정 기준을 샌프란시스코 직원에서 전 세계 직원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근로자의 임금 수준이 다른 지역보다 높은 만큼 더 많은 기업이 과세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었다.

또 세율 역시 대폭 인상될 예정이었다. 개정안이 통과됐다면 지역 매출 기준 0.183~1.121%, 급여 총액 기준 0.75~4.47% 수준으로 추가 부담이 커질 수 있었다. 노동계는 이를 통해 시 재정을 보강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기업 비용 증가와 투자 위축 가능성을 경고했다.

주목할 점은 이른바 ‘과도한 CEO 보수세’가 처음 도입된 2020년에는 30%포인트 차이로 압도적으로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확대안에 대해서는 분위기가 달랐다. 샌프란시스코 경제분석국은 최근 보고서에서 해당 제도가 연간 최대 3억달러의 세수를 창출할 수 있지만 공공부문 일자리 증가 효과보다 민간부문 일자리 감소 영향이 더 클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분석국은 샌프란시스코 경제가 현재 하강 국면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축소되는 과세 기반에 추가 세금을 부과할 경우 기업 이전을 촉진해 장기적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시 경제 회복 과정에서 세수 확대보다 기업 유지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유권자들의 선택에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증세 찬성 진영은 결과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예스 온 D’ 캠페인의 스콧 만 대변인은 법안 부결로 샌프란시스코가 지속적인 재정적자를 메울 명확한 해법을 잃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향후 인력 감축과 서비스 축소의 부담이 사회적 취약계층에 집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루리 시장은 이번 결과가 유권자들이 현재의 정책 방향을 지지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그는 도시 회복은 일자리 창출과 소기업 성장, 투자 유치를 통해 이뤄져야 하며 기업 활동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정책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번 투표는 미국 전역에서 진행 중인 부유세 및 자산세 논쟁과도 맞물려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억만장자세 도입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지고 있으며, 메인주와 워싱턴주 등에서도 유사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선택은 재정 확보와 기업 경쟁력 유지 사이의 균형을 둘러싼 논쟁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