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팔려갈 뻔한 모과나무, 생각의 정원으로 피어나다
한 기업가의 집념이 담긴 대구 사유원
30여년 공들여 직접 조성
300년 된 모과나무 유출 막고
2021년 66만㎡ 규모 정원 열어
자연을 주인공으로 만든 건축
풍경 담아낸 승효상 '물의 정원'
피카소 작품 위한 아트 파빌리온
알바루 시자 '소요헌'으로 부활
30여년 공들여 직접 조성
300년 된 모과나무 유출 막고
2021년 66만㎡ 규모 정원 열어
자연을 주인공으로 만든 건축
풍경 담아낸 승효상 '물의 정원'
피카소 작품 위한 아트 파빌리온
알바루 시자 '소요헌'으로 부활
이곳은 불편하다. 예약해야 하고, 입장료는 평일에도 5만원에 달하며 드넓은 영역을 정해진 시간 내에 걸어야 한다. 모든 것이 ‘더 빠르고, 더 싸고, 더 매끄럽게’를 향해 달리는 시대에 정반대를 향해 있다. 그러나 이 불편은 의도된 마찰이다. 귀하게 모은 것일수록 함부로 소비되지 않게 하고자 하는 배려다. 누구나 쉽게 닿을 수 있는 것은 쉽게 잊힌다는 사실을 이 정원은 잘 알고 있다.
한 사람이 평생 모은 것
시작은 한 그루 나무였다. 1989년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은 ‘300년 된 모과나무 네 그루가 일본으로 실려 나간다’는 소식에 부산항으로 달려가 시세의 네 배에 달하는 값을 치르고 출항을 막았다. 그는 2006년 군위군에 부지를 마련했고, 다시 15년을 들여 2021년 가을, 66만㎡(약 20만 평) 규모의 정원을 열었다. 부산항에서 구해낸 모과나무들이 코르텐 화단 위 풍설기천년(風雪幾千年)에 서 있다. 수백 년의 풍상을 견딘 굵은 줄기와 뒤틀린 가지가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서서 정원의 이름값을 완성한다.수집은 나무에 그치지 않았다. 물의 정원 사담은 그 절정이다.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이 건물은 구로 철판으로 외장을 둘러 묵직한 물성으로 풍경을 해치지 않는다. 장방형의 몸체가 잔잔한 연못에 그대로 비쳐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수면은 아무 말 없이 하늘을 담고 나무를 비춘다. 현대 건축과 수백 년 된 자연이 한 장면으로 포개지는 곳이다.
대가들이 자연 앞에 물러서다
‘자유롭게 거니는 집’이라는 뜻의 이 콘크리트 동굴은 출입문도 창도 없다. 오직 좁은 개구부로 스며드는 빛만으로 공간의 깊이와 명암을 드러낸다. 안에서 길은 두 갈래로 갈린다. 한 길은 높아져 전쟁의 참상을 상징하는 붉은 철 조형에 닿고, 다른 길은 낮게 가라앉아 둥근 ‘생명의 알’에 이른다. 죽음을 향해 치솟는 길과 생명을 향해 내려앉는 길이 어둠 속에서 갈라졌다가 다시 만난다. 공교롭게도 이 일대는 6·25전쟁의 격전지였다. 먼 나라의 학살을 담으려던 공간이 또 다른 전쟁의 땅에 내려앉아 죽음과 생명의 순환을 한 몸에 새긴 셈이다.
곁에는 함께 구상한 전망대 소대가 있다. 나무 바다 위로 잠망경처럼 불쑥 솟은 이 탑은 인위적인 요소를 최대한 숨기고,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20.5m 높이로 비스듬히 기운 좁은 계단을 올라 꼭대기에 다다르면 사방의 산이 시야에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다. 잠시 사람의 시선이 새의 시선으로 옮겨 가는 듯하다.
건축가 최욱이 설계한 카페 가가빈빈은 정원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다. 평평하고 너른 지붕을 최소한의 구조가 떠받쳐 지붕이 허공에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통유리 너머로 비로봉과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걸리고, 실내는 풍경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물러서 있다. 이곳의 시그니처 음료는 300년 묵은 모과나무의 열매로 담근 모과차다. 부산항에서 구해낸 한 그루의 시간이 한 잔의 차가 돼 손안에 들어오는 경험은 특별하다.
새를 위한 집, 언젠가 사라질 집
이곳에서 가장 멀리까지 간 건축물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승효상이 설계한 조사(鳥寺)는 물이 고이고 흐르며 몰려드는 새들을 위한 안식처다. 조사는 새가 온전히 주인인 집으로, 대나무로 지어졌다. 영원하라고 세운 것이 아니라 언젠가 삭아 풍경 속 기억으로 사라지도록 만든 집이다. 자연을 주인공으로 삼는다는 말의 끝에는, 건축마저 자연처럼 났다가 스러지게 두는 태도가 있다.한 사람의 가장 사적인 마음까지 이곳에서는 공간이 됐다. 시자가 설계한 작은 경당 ‘내심낙원(內心樂園)’은 설립자의 장인 김익진과 그와 영혼의 우정을 나눈 벨기에 출신 찰스 메우스 신부를 기린다. 김익진은 해방 무렵 재산을 소작농에게 나눠주고 청빈한 일생을 바친 지식인이자, 중국 종교학자 우징숑의 책 <내심낙원>을 번역한 사람이다. 경당은 바로 그 책에서 이름을 얻었다. 입방체의 단정한 전면에 삼각형 캐노피가 불쑥 튀어나와 묘한 조형을 이룬다. 흰 벽 사이로 비스듬히 떨어지는 빛과 십자가 하나가 신성하고도 영험한 분위기를 빚는다. 풍요로운 자연 한복판에서, 비로소 온전히 혼자가 되는 시간이다.
사유(私有)가 사유(思惟)가 될 때
한 사람이 사적으로 모은 것을 모두의 것으로 여는 방법으로 기부나 미술관 위탁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의 창업주는 30여 년에 걸쳐 직접 정원을 짓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을 값싸고 손쉬운 구경거리로 풀지 않았다. 예약과 입장료, 시간이라는 마찰을 일부러 남겼다. 사적으로 귀하게 모은 것이 공적으로도 귀하게 다뤄지도록 하기 위함이다.그렇게 사유(私有)는 사유(思惟)가 됐었다. 사람들은 이 산골에 들어와 한 사람이 평생 빚은 풍경 앞에 멈춰 서서 자기 생각에 잠긴다. 그 풍경은 고정돼 있지 않다. 봄에는 새순이 돋고, 여름에는 녹음이 짙어지며, 가을에는 단풍이 들고, 겨울에는 침묵만 남는다. 봄의 사유원과 겨울의 사유원은 같은 좌표 위에 있지만 같은 장소가 아니다. 그러니 어쩌면 네 번을 가야 비로소 한 번 본 셈이 되는 곳이다. 무엇을 얼마나 모으느냐가 아니라 모은 것을 끝내 어떻게 여느냐. 모두가 같은 곳을 같은 속도로 보는 시대에 사유원이 던지는 이 질문은 더 먹먹하게 다가온다.
진세인 공간교과서 대표(Wave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