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당국이 중국에 첨단 인공지능(AI) 칩 판매를 강하게 제한하는 수출 통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규제에 보조를 맞추면서 엔비디아 칩이 들어간 AI 서버 등이 중국에 우회 반입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지난달 미·중 정상회담 이후 양국 간 무역 갈등이 다소 완화됐지만, AI·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를 둘러싼 안보 경쟁은 계속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대만 당국은 화웨이, SMIC 등 기존 수출 블랙리스트 기업뿐만 아니라 중국 내 모든 기업 등을 대상으로 AI 칩 판매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소식통은 블룸버그에 “이번 구상이 엔비디아 칩을 사용한 AI 서버 같은 첨단 하드웨어가 대만에서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법적 수단을 늘리려는 목적”이라고 전했다.

대만의 현행 법체계에선 허가받지 않은 AI 칩의 중국 수출 자체가 범죄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중국행 AI 칩 우회 수출 등 사건의 법 적용 범위가 좁고 위법에 대한 입증 문턱도 높다. 대만 검찰은 지난달 엔비디아 칩이 적용된 서버가 중국, 홍콩, 마카오로 반출된 정황을 확인하고 밀수 용의자 3명을 구속했다. 칩 밀수 관련자들이 구속된 것은 처음이다. 적용된 혐의는 문서 위조였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특정 기업을 겨냥하던 기존 방식에서 한 단계 나아가 사실상 중국 전역으로 수출 통제가 확대될 전망이다. 앞서 대만 당국은 지난해 화웨이, SMIC 등 일부 중국 기업만 기술협력 제한 블랙리스트에 올린 바 있다. 블룸버그는 “라이칭더 대만 총통 정부가 기술 및 국가안보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한 조치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대만의 이번 조치에 대해 “미국의 대중 AI 칩 통제에 발을 맞추려는 시도”라고 보고 있다. 미 국방부는 지난 8일 국방수권법(NDAA) 1260H조에 따라 미국 내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운영하는 중국 군사 기업의 업데이트 목록을 관보에 게재했다. 대상 중국 기업에는 알리바바, 바이두, 비야디, 텐센트 등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대만의 규제 기준도 미국과 비슷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정 성능 기준을 넘는 AI 칩을 통제 대상으로 지정하는 방식이다. 2022년부터 엔비디아 고성능 칩의 대중 수출을 제한해온 미국의 정책과 같은 구조다. 구체적인 적용 범위와 기준은 양국 고위 당국자의 최종 검토를 앞둬 세부 조율은 남아 있다. 대만 경제부는 “국제 수출 통제 기준에 맞춰 첨단 기술 제품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의 반발은 대만이 실제 정책을 실행하는 데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특히 자사의 ‘어센드 AI 칩’ 생산을 대만 업체에 상당수 의존해온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이 직접적으로 타격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등 중국 대형 AI 플랫폼 기업은 엔비디아의 ‘H200 블랙웰’ 등 최신 AI 칩 조달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부족으로 AI 모델 개발과 클라우드 서비스의 운영비 부담 등이 커질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이란 우려도 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 등은 향후 5년간 2조위안(약 450조원)을 들여 전국에 ‘통합 컴퓨팅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계획을 세웠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