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윤홍천 단독 인터뷰
한예종 정교수로 올해 첫 봄학기 지내
“교육자, 인내력 굉장히 요하는 직업”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다음달 4일 통영, 5일 예술의전당서 협연
교직에 있으면서 공연으로 관객의 마음도 울리는 피아니스트가 되기란 쉽지 않다. 지난해 8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정교수로 임용된 피아니스트 윤홍천은 그 길을 걷고 있다. 교육자로서 첫 봄학기를 난 그가 다시 연주 활동에 집중한다. 10일 독일 뷔르츠부르크 공연을 시작으로 여름 내내 한국과 독일을 오가는 공연들로 올 여름 일정을 빼곡히 채웠다.
피아니스트 윤홍천이 서울 서초둥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아르떼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윤홍천은 다음달 열릴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에서도 연주한다. 이 공연의 협연자 인터뷰로 한예종 연구실에서 아르떼와 만난 그는 협연 이야기뿐 아니라 학교와 무대를 오가는 삶에서 얻은 깨달음도 전했다.
“매일 다른 사람의 연주를 보게 되니 저도 연주에서 원하는 게 오히려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제자들과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오히려 제가 배우기도 해요.”
“열 번 얘기해도 결국 학생이 깨우쳐야”
윤홍천은 한국의 ‘음반 거장’이다. ‘한국인 피아니스트가 세계에서 통하려면 유명 콩쿠르에서 입상해야 한다’는 통념을 깼다는 점에선 새로운 길을 제시한 개척자로 불릴 만하다. 윤홍천은 2013년 지휘 대가 로린 마젤에게 직접 자기 CD를 보내 오디션 기회를 얻고 뮌헨 필하모닉 협연 기회를 따냈다. 같은 해 내놨던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앨범은 영국 그라모폰에서 ‘에디터스 초이스’에 선정됐다. 2016년엔 모차르트 실내악 음반으로 독일 에코 클래식 상을 받았다.
연주자로서 한창 활약하고 있는 그가 교편을 잡은 건 스스로의 편견을 깨려는 시도였다. 최근까지도 생각지 않던 길이었다. 스승은 으레 제자의 콩쿠르 성과를 자신의 훈장으로 삼곤 하는데, 그 모습이 매력적이진 않았다고 한다. 스승의 존재가 제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도 좀처럼 들지 않았다.
“아직도 의문부호가 있죠. 제가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열 번 얘기해도 결국 학생이 깨우쳐야 바뀌더라고요. 안 바뀌다가 갑자기 바뀌기도 하고. 교육자는 굉장히 인내력을 요구하는 직업이더라고요. 제가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해서도 안 되는 거죠.”
피아니스트 윤홍천이 서울 서초둥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아르떼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자신이 그래온 것처럼 그는 제자들에게도 음악에 다양한 길이 있음을 보여줬다. “제가 어릴 땐 유명인에게 배우고 콩쿠르에 입상해서 연주자가 되는 게 꿈인 경우가 많았어요. 요즘엔 ‘콩쿠르를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제자들이 나오고 있어요. 스스로 솔리스트가 되기 어렵다고 여기거나 ‘실내악 연주자나 반주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죠. 무엇을 바라든 꿈을 자세하게 꾸라고 말해줍니다. 모두가 솔리스트가 될 순 없겠지만 피아노를 하는 학생들 모두 무언가 할 자리는 있다고 생각해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현, 부드럽고 따뜻”
제자들의 연주에선 기교를 뽐내기보다는 ‘자신의 색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피아노를 잘 다뤄서 틀리지 않고 오면 선생님이 음악을 만들어주는 경우가 있어요. 이건 학생 연주에 선생님이 화장을 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학생들이 피아노는 잘 치는데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독일 도시로 알거나, 햄릿의 작가를 모르기도 해요. 전 창의력이 아는 것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알면 궁금한 게 생기니까요. 그래서 일대일로 학생이 알고 싶어하는 걸 끄집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유학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윤홍천은 길라잡이다.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과 독일 하노버 음대에서 공부하면서 미국과 유럽의 서로 다른 학풍을 체감해서다.
“감수성이 있는 학생이라면 유럽을 추천합니다. 유럽에 처음 가서 베토벤 무덤 앞에서 전율을 느끼고, 비엔나 근교에 흐르는 시냇물을 보며 슈베르트를, 파리 시내를 걸으며 쇼팽을 상상하게 되는 건 유럽이니 가능한 일이죠. 미국은 동양인이 많아 외로움이나 이방인으로서의 느낌이 덜 들어서 좋아요. 이곳엔 20세기 초반에 유럽에서 망명 온 유대인 교육가가 많았습니다. 이들은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배워나가는 과정을 강조하곤 합니다.”
협연 곡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라단조. 모차르트의 단 2개뿐인 단조 피아노 협주곡이다. 윤홍천은 “2007년 한 콩쿠르에서 연주한 뒤 어려움을 느껴 한동안 꺼내지 않던 레퍼토리”라고 했다.
“오랜만에 연주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이탈리아 코모 아카데미에서 들었던 얘기 때문인데요. 베토벤은 모차르트의 단조 협주곡 2곡 중 24번 다단조에선 카덴차(피아니스트 독주 구간)를 안 썼는데, 이 20번 라단조에선 카덴차를 썼어요. 24번은 인생의 비관을 받아들이는 곡인 반면 20번은 모차르트가 삶의 의지를 드러낸 곡이었다고 해요. 이 의지의 결과 맞아떨어져 베토벤이 카덴차를 쓴 거죠. 이걸 알게 되니 비슷하게 들리던 곡이 다르게 들리더라고요. 눈이 번쩍 뜨인 순간이었죠.”
피아니스트 윤홍천. /사진출처. 아르티펙스.
스스로는 조금 가르치려는 느낌이 드는 베토벤보다는 생기가 돋는 모차르트 쪽이 더 끌린다고. “독일 음악의 낭만은 억압되지 않은 자유로움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모차르트는 처음으로 궁정이나 종교인에게서 벗어나 독립한 작곡가입니다. 보수성에서 벗어나려 했던 모차르트의 갈망을 알수록 이 곡의 가치가 대단하게 느껴져요. 물론 연주는 어렵죠. 모차르트 곡에선 연주자가 한 음 한 음 뒤로 숨을 공간이 없어요. 겁나기 쉽죠. 피아노 상태나 홀의 음향 상태에 영향을 많이 받는 곡이기도 합니다.”
그는 8월 29일 독일 공연을 마친 뒤 학교로 돌아온다. 그에게 교육자와 연주자, 각각의 바람을 물었다. “교육자로서의 꿈은 학생들이 즐겁게 공부하도록 하는 겁니다. 선생님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는 연주. 그랬으면 좋겠어요. 연주자로서의 꿈이라면 그동안 했던 레퍼토리에 안주하지 않고 새 레퍼토리도 하면서 음반 작업도 하고 싶네요. 전 ENTJ(외향·직관·사고·판단형)라 뭔가 일을 계속 만들어야 연습을 해요(웃음).”